지난해
2002년 9월의 사건이었다. 전명순권사님의
모친 장례식엘 다녀왔다. 10시에 평촌 한림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예배를 드리고, 버스로 벽제화장터를 향해 출발했다. 고인이 화장을 유언으로 남기셨기
때문이다. 예배를 마치고 11시 되지 안아서 출발했는데, 길은 막히지 않고 뻥 뚫렸다. 길이 막힐 것을 염두에 두고 일찍
출발한 것인데, 12시 조금 넘어 벽제에 다다랐다. 관리소에는
화장 예약을 14:40으로 잡아 놓은 상태라, 중간에 시간이
붕~ 떠서 아주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 화장장은 차로 넘쳐나서
시간 전에 가봐야 차댈데도 없고, 화장을 미리 당겨서 할 수도 없었다.(참고로
서울 인근에 화장장은 벽제 한곳 밖에 없다. 벽제 화장터가 하루 처리할 수 있는 화장건이 60여건이라고 하는데 벽제화장장은 많을 때는 하루 100여건도 처리한다고
한다.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붐비고, 일정이 빡빡하다는 소리다)
그 때 전권사님과 언니가 사태수습에 나셨다(이 두분은 다 권사님이시다. 물론 고인이 되신 모친도 집사님이셨다). 점심때도 되었고, 또 문상오신 분들의 시간 활용을 위해서도 지금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화장터로 가면 좋겠다는 안(案)을 낸 것이다. 영구차를 운전하는 기사분이 "
그 때 전권사님과 언니가 사태수습에 나셨다(이 두분은 다 권사님이시다. 물론 고인이 되신 모친도 집사님이셨다). 점심때도 되었고, 또 문상오신 분들의 시간 활용을 위해서도 지금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화장터로 가면 좋겠다는 안(案)을 낸 것이다. 영구차를 운전하는 기사분이 "
그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고인을 버스에 모신 채 식당 앞에 차를 대고 식사를 하는 것이 좀..
뭐...하지 않느냐
"
고 하시면서 조금 꺼림직해 했다. 그러나 두 권사님의 결정으로 기사분은 웃으시면서 "
유족들이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죠뭐
"라고 그 결정에 따랐다.
곧 차는 화장터 근처 식당에 파킹이 되었고, 문상객들은 다들 내려서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나무 그늘 밑에서 쉬었다가 화장장을 들어가서 장례를 여유있게 치르고 돌아왔다.
나는 이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두가지를 느꼈다.
하나는 믿음의 가정에서 치러지는 장례와 불신가정에서 치러지는 장례가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벽제 화장터는 시간마다 처리되는 화장으로 수많은 문상객과 유족들이 넘처나는 곳이다. 그러다보니 믿는 가정의 장례예배가 드려지는 바로 옆에서 불신가정의 장례가 진행되는터라 두 장례가 극명하게 비교가 된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나 대조적이다. 믿음의 가정에서 드려지는 장례예배는 고인을 천국으로 먼저 보내는 잔치 비슷한 분위기인 반면에, 불신가정의 분위기는 통곡을 하고 오열을 하는 등... 가는 자나 보내는 자나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해 한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예수 믿고 죽는 것이 고인에게나 유족에게나 정말 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를 느꼈는데, 그것은 문상객들 점심을 먼저 먹이기로 결정하는 두분 권사님의 태도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우리나라, 특히 동양문화권은
곧 차는 화장터 근처 식당에 파킹이 되었고, 문상객들은 다들 내려서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나무 그늘 밑에서 쉬었다가 화장장을 들어가서 장례를 여유있게 치르고 돌아왔다.
나는 이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두가지를 느꼈다.
하나는 믿음의 가정에서 치러지는 장례와 불신가정에서 치러지는 장례가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벽제 화장터는 시간마다 처리되는 화장으로 수많은 문상객과 유족들이 넘처나는 곳이다. 그러다보니 믿는 가정의 장례예배가 드려지는 바로 옆에서 불신가정의 장례가 진행되는터라 두 장례가 극명하게 비교가 된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나 대조적이다. 믿음의 가정에서 드려지는 장례예배는 고인을 천국으로 먼저 보내는 잔치 비슷한 분위기인 반면에, 불신가정의 분위기는 통곡을 하고 오열을 하는 등... 가는 자나 보내는 자나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해 한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예수 믿고 죽는 것이 고인에게나 유족에게나 정말 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를 느꼈는데, 그것은 문상객들 점심을 먼저 먹이기로 결정하는 두분 권사님의 태도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우리나라, 특히 동양문화권은
불교와 유교의 사고방식에
젖어있다.
이 문화권의 문화는
'죽은자가 산자를 지배하는' 문화이다.
즉
죽은 조상을 잘 섬겨야 후손이 복을 받는다는
사상에 근거를 둔 수많은 제사와 규례들이 살아 있는 후손들을 옭아매고 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뭔가
결정하고 절차를 정하는데 죽은자들이 그 결정의 첫 번째 고려 변수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 예수 믿지 않는 집안에서, 영구차를 식당 앞에 세워두고 문상객들에게 밥을 먹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결정은 고인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기에 충분한 일이다. 사람들이 왜 욕을 해댈까? 그들은 바로 죽은자가 산자를 지배하는 문화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분 권사님의 태도는 달랐다. 그분들은 복음과 진리로 무장되어 있는 문화에 젖어 있었다. 그분들은 죽은자와 산자를 동시에 배려하되 죽은자가 산자를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한국 교회 성도들중에는 불교적 기독교, 유교적 기독교, 샤머니즘적 기독교를 믿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교회 열심히 다니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분인데... 막상 얘기를 나눠보면 사고방식과 세계관/가치관이 성경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교, 불교, 샤머니즘에 더 가까운 분들이 정말 많다. 그런데 적어도 이 두분 권사님은 아니었다. 믿는 가정의 장례식장에서도 죽은자를 배려한다는 명분하에 성경의 세계관/가치관을 잠시 덮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한데.... 두분 권사님처럼 결정을 내리는 경우는 처음봤다. 이 두분 권사님의 결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참 흐뭇하고 기분이 좋았다. 이건 단순히 시간활용문제나, 밥 빨리먹는 문제가 아니었다. 엄청난 발상의 전환이었다.
유교와 불교에서 말하는 효는 죽은 조상을 잘 모시는 측면이 강한 반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효는 철저하게 살아계실 때 잘해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두분 권사님의 태도는 달랐다. 그분들은 복음과 진리로 무장되어 있는 문화에 젖어 있었다. 그분들은 죽은자와 산자를 동시에 배려하되 죽은자가 산자를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한국 교회 성도들중에는 불교적 기독교, 유교적 기독교, 샤머니즘적 기독교를 믿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교회 열심히 다니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분인데... 막상 얘기를 나눠보면 사고방식과 세계관/가치관이 성경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교, 불교, 샤머니즘에 더 가까운 분들이 정말 많다. 그런데 적어도 이 두분 권사님은 아니었다. 믿는 가정의 장례식장에서도 죽은자를 배려한다는 명분하에 성경의 세계관/가치관을 잠시 덮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한데.... 두분 권사님처럼 결정을 내리는 경우는 처음봤다. 이 두분 권사님의 결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참 흐뭇하고 기분이 좋았다. 이건 단순히 시간활용문제나, 밥 빨리먹는 문제가 아니었다. 엄청난 발상의 전환이었다.
유교와 불교에서 말하는 효는 죽은 조상을 잘 모시는 측면이 강한 반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효는 철저하게 살아계실 때 잘해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십계명의 다섯 번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죽은 조상 잘 모시라고 만들어진 것이
절대 아니다. 부모님 살아실제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죽고난
뒤 초호화판으로 제사를 지낸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한국전통적 사고방식을 가진 분들은 제사를
꼬투리 잡아 기독교는 아래위도 없고, 효가 뭔지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종교라고 몰아붙인다. 이건 기독교에 대해 전혀 모르는 분들이 오해를 한 결과이다.
환갑이 넘으신 두분 권사님이 5년동안 모친의 병수발을 하면서 효도를 한 것도 높이 평가받을 만한하다. 혹시
더 잘해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을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고인을 먼저 하나님 품으로 보내는 두분
권사님의 여유있는 태도를 보면서 예수 믿는 것의 묘미가 바로 저런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한 제자의 부친이 돌아가셨다.
그 때 그 제자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한 제자의 부친이 돌아가셨다.
그 때 그 제자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다.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 요청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참 의미있는 답변이다. 죽은자가 산자를 지배하는 문화를 뒤집어 엎으시고, 산자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따르도록 권면하는 진리의 말씀이다. 우리는 산자이다. 그리고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다.
살아있는 영혼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여~
죽은 귀신한테 잘보여서 복받을 생각이랑 아예 말고,
부모님 살아실제 잘 하자...
그리고 살아계신 주님을 따르라!
살아있는 영혼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여~
죽은 귀신한테 잘보여서 복받을 생각이랑 아예 말고,
부모님 살아실제 잘 하자...
그리고 살아계신 주님을 따르라!
온 세상이 성경과 하나님나라 가치와 세계관으로
뒤바뀌는 것을 꿈꾸며 - 2002.9.29 서요섭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