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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19일 일요일

다카시나 슈지, 「예술과 패트런-명화로 읽는 미술 후원의 역사」, 눌와

高階秀爾(다카시나 슈지), 「예술과 패트런-명화로 읽는 미술 후원의 역사」

예술 작품을 그리고/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 뒤에는 예술가들이 그리고/만들도록 요청하고 주문하고 비평하고 후원하고, 돈 대주고 격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Patron이라 부른다. 패트런을 이해하고, 패트런과 예술가들의 미묘한 관계를 이해하지 않고는 작품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이 책은 시대별로 패트런 시스템 운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한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그 내용을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15세기 르네상스 전성기가 피렌체에서 꽃 핀 것은 메디치가문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예술가들의 뒤를 봐주며 돈을 대고 후원한 것은 메디치 가문 뿐 아니라 다른 여러 가문들도 있고, 특히 동업자 조합(직물조합 등)이 큰 역할을 했다.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한 성과인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와 ‘서명의 방’ 벽화는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그린 것이지만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제작 의뢰와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프랑수아 1세가 당시 문화 선진국이던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받아들여 수많은 작품들을 매입하고 말년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후원한 사실은 유명하다.
루벤스는 스페인 필리페 4세에게 , 또 영국의 찰스 1세에게 기사 작위를 받고 외교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래서 빈 미술사 박물관에 있는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자화상은 화가라기 보다는 직업 외교관 내지는 귀족 기사처럼 보인다.
1517년에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에 대한 대항으로 가톨릭은 트렌트 종교회의(1545-1563)를 통해 가톨릭 자체 내에서 개혁을 추진한다. 이를 반동종교개혁이라고 하는데 이 회의에서 민중들을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해 회화나 조각 등 예술 표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로 결정한다. “우리는 구원의 신비한 이야기를 회화나 그 밖의 수단으로 표현함으로써 민중이 신앙의 조항을 끊임없이 상기하고 마음에 간직하도록 교화 육성할 것”이라는 결정은 바로크 미술 발전을 재촉하는 큰 원동력이 되었다. 프로테스탄티즘이 엄격한 금욕적 태도 때문에 회화나 조각에 강한 적대감을 보였던 데 반해, 이 시기의 가톨릭 성당이 더 호화롭고 화려하게 치장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바로크 예술은 교회의 보호 아래 발전했다. pp.88-90.

17세기 말 소수의 부유한 시민(예를 들면 은행가로 카라바조를 열렬히 후원하고 지지한 빈첸초 주스티니아니 등)도 있다. 하지만 로마의 오랜 명문가가 몰락해 가던 이 시기에 나타난 유력한 패트런은 교황청과 관계 된 고위 성직자였다. 니콜라 푸생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프란체스코 바르베리니 추기경 때문이다. p.98.
17세기 중엽 네덜란드 공화국은 프로테스탄트가 대세였다. 스페인처럼 엄격한 이단 심문도 없고,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피비린내 나는 왕위 쟁탈전이나 종교전쟁도 없었다. 정치 종교적 관용이 넘쳐나는 분위기의 네덜란드에서 경제가 발전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런 배경 때문에 유럽 다른 나라들 보다 훨씬 일찍 이 시기 네덜란드에는 전문 화상이 생겨났다. 베르메르의 아버지는 여관을 경영하면서 성 루가 조합에 등록된 ‘미술상’이었다. 매형도 고급 액자상으로 유명한 화상이었다. 베르메르 자신도 화상으로 활동했다. 조합 뿐 아니라 이 시기 네덜란드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시민단체도 패트런의 역할을 맡게 된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집단초상화’ 장르가 나타난다. 이 집단초상화는 오늘날의 단체 기념사진과 같은데 렘브란트의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는 암스테르담 외과의사 조합이 의뢰한 집단초상화다. 또 렘브란트의 명작 ‘야경’은 암스테르담 시민대(화승총조합)이 주문한 집단초상화다. pp.103-111.

돈 있는 귀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예술 작품 감상이 누구라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미술관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은 ‘프랑스 혁명’의 결과다. 루브르 궁전을 미술관으로 바꾸기로 결정한 것은 혁명정부다. 이 흐름을 이어받은 나폴레옹은 프랑스 국내 미술품 뿐만 아니라 스페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전쟁으로 정복한 외국 각지에서 조직적으로 회화나 조각을 파리로 가져와 미술관을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미술관이 등장하고 전람회 제도가 확립되자 미술작품을 향수하는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음악 세계에서 예전에는 모차르트가 그러했듯이 주로 교회나 왕후귀족의 살롱이 연주의 주요 무대였다면, 콘서트홀 내지는 극장에서 많은 일반 청중을 대상으로 연주를 하는 오늘날과 같은 형식이 확립된 것도 이 무렵이다. 감상 형식의 변화가 지니는 의미는 두가지다. 첫째, 예술 작품이 장식이나 권위나 종교적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예술’로서 즉 미적 목적을 위해 감상된다는 예술의 자율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고 둘째, 한정된 특정 감상자층으로부터 열린 불특정 감상자층으로의 확대를 가져왔다. 특히 대량생산이 가능한 석판화의 등장은 미술애호가의 수를 급증시켰다. pp.129-134.

프랑스혁명 이전 17세기 태양왕 시대에 설립된 회화조각 아카데미 전람회는 예술가등이 유명세를 타며 등장하는 등용문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 예술가들의 유일한 공식발표 기관이었던 아카데미의 전람회가 점차 경직되어 새로운 시도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게 되자 이에 반발하여 프랑스혁명 이후 여러 형태의 개인전이 개최되기 시작했다. 1864년 살롱의 심사는 어느 해보다 엄격해서 낙선된 화가들 사이에 불만이 높았다. 그 소리가 귀에 들어갔던지 나폴레옹 3세는 살롱 개막 직전에 회장을 찾아와 낙선 작품으로 살펴본 후, 살롱과는 달리 낙선 작품만을 모은 전람회를 열라고 명령했다. 이 낙선전에서 스캔들을 일으키고 떨어진 그 유명한 ‘풀밭 위의 식사’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마네의 명작이 전시되었다. 결국 예술원이 창설되면서 예전의 살롱에서는 아카데미 회원이라야만 출품이 가능했던 제도가 폐지되고, 19세기 살롱에서는 ‘자유/평등’의 원칙에 입각하여 누구라도 참가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실제로 외국인을 포함해서 누구한테나 문호가 개방된 제도가 만들어지면서 유럽 전역의 예술가들은 파리로 몰려들게 된다. 이런 배경이 파리가 국제적인 예술 도시가 되는데 큰 요인이 되었다. pp.130-172.

예술작품 관객층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출품자 수 또한 급격히 늘어났다. 경험이 얕은 관객은 수많은 작품을 어떻게 판단해야할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한편 예술가들도 직접 주문을 받는 일이 적어졌고, 따라서 무엇을 그릴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해야만 했다. 거기에서, 관객에게는 작품의 의미나 질이 좋고 나쁜지를 가르치고 예술가에게는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를 충고하는 중개자로서 미술비평가가 등장하게 된다. 당시 문인이면서 미술비평을 활약했던 인물로는 스탕달, 보들레르, 테오필고티에, 졸라 등이 있다. 본인이 화가이면서 미술비평에도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 들라크루아다. 들라크루아는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푸생 같은 대가부터 피에로 폴 프뤼동, 제리코, 코로 등 동시대 선배 화가들까지 논한 작가론을 발표했다. 괴테도 당시 유명한 미술비평가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프로필렌’이라는 잡지를 통해 회화 콩쿠르를 기획하기도 했다. 마네가 ‘올랭피아’를 출품했을 때 신문비평은 ‘뻔뻔스럽고 너절하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이에 대해 에밀 졸라는 마네를 옹호하는 평론을 써서 ‘풀밭위의 식사’와 ‘올랭피아’는 장래에 루부르 미술관에 소장될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는 사회적으로 큰 권위를 지니고 있던 아카데미파에 대항하여 등장한 혁신적인 전위파와의 대립으로 연결된다.
새로운 예술 운동의 옹호자로서 자각을 가지고 활동한 최초의 화상은 뒤랑 뤼엘이다. 뒤랑 뤼엘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사들였다. 1874년 ‘인상파전’이 재정적으로 완전히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뒤랑 뤼엘은 계속 인상파들을 원조했고 2년 후에 열린 제2회전 때는 자신의 화랑을 전시장으로 제공하고 1882년 제7회전 때도 전시장 확보를 위해 노력했으며 자신의 화랑에서 인상파 화가들이 개인전을 개회할 수 있도록 도왔다.
세기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 후까지 인상파, 후기 인상파, 나비파, 포비슴, 큐비즘 등 근대 미술사의 주요한 흐름을 형성하는 예술 운동에 끊임없이 눈을 돌리고 재빨리 뛰어난 재능을 찾아냈던 사람이 바로 앙브루아즈 볼라르다. 볼라르는 세잔의 첫 개인전을 열었고 고흐가 죽은 후 최초의 회고전을 했으며, 1901년 피카소의 첫 개인전, 1904년에는 앙리 마티스의 첫 개인전을 조직했다. 앙리 루소의 작품을 처음으로 산 것도 그였다.
2차대전 후 미술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인물은 페기 구겐하임이다.
20세기 들어서는 정부가 예술작품을 발주하면서 관공서가 패트런으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프랑스 문화부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는 파리 오페라 극장에 20세기 예술 기념물을 남기기 위해 마르크 샤갈에게 천장화 제작을 맡겼다. 모차르트의 ‘요술피리’에서 스트라빈스키의 ‘불새’에 이르는 열네 작곡가의 작품을 주제로 한 샤갈의 천장화는 파리 오페라 극장의 명물이 되었다. 하지만 21세기 현재 거물급 컬렉터는 재벌들이다. J,P.모건, 록펠러, 밴더빌트.... 삼성...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참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콩쿠르/전람회 개최하고
1.전시 특권 제공/ 도록제작/ 판매 대행/ 미리 구매
2.상금 수여
3.적어도 1년 이상 작업공간 무료 제공
등등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거 밀어주는 錢主들이 별로 없을까? 돈 벌어서 투자와 재산 은닉 목적으로만 예술작품 구매하지 말고, 진정으로 예술을 사랑하고 후원하고자 하는 부자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다카시나 슈지, 미의 사색가들, 학고재

지구상에서 정보 요약의 달인들은 전부 일본사람이 아닐까... 싶다. 일본 민족성 자체가 정리/요약에 능한게 아닐까? 복잡한 사상과 이론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입문서로 손에 쥐게 되는 책들은 거의 다 일본사람이 쓴 책이다. 내 경우, 서양미술을 공부하면서 접하게 된 첫 책이 바로 高階秀爾(다카시나 슈지)의 ‘명화를 보는 눈’이다. 재미와 통찰, 요약과 정리, 깔끔하고 쉬운 설명... 다카시나 슈지에 반했다. 그러다 번역되어 있는 그의 책을 두권 더 구입했다.

이 책은 저자가 ‘명저 다이제스트’라는 제목으로 잡지에 1년동안 연재한 글을 다듬어 단행본으로 출판한 책이다. 저자는 후기에서 ‘독서보고서’라고 밝히고 있다. 1930년대 이후 유럽의 주요 美術史家/비평가들의 논리와 논문/저서의 핵심을 잘 짚어주고 있다. 총 22장으로 구성되어있는데 먼저 각 미술사가/비평가의 인생사를 몇문장으로 요약한 다음, 중요 저서의 내용과 그 공헌을 설명하고 있어 쉽게 읽힌다. 이 책 한권만으로도 일반인이 미술사 연구에 꼭 읽어봐야할 저서들을 대충 한번 다 훓어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각 chapter별로 읽으면서 줄쳤던 부분을 옮겨본다.

제1장 엘리 포르『형태의 정신』
포르는 틀에 박히지 않은 유연한 感想眼을 갖고 있었다. 이는 그의 본직이 임상의요, 생물학자로서 전문 역사가가 아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기존 미학이나 역사에 의거한 가치판단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이다. ‘감식가’나 역사가가 어떤 작품이나 양식을 마주하고 다른 작품과 상이한 독자적 성격을 부각시키는데 전력을 기울일 때, 포르는 시대나 지역이 멀리 떨어져 있는 미술작품에서 공통된 표현을 찾아내, 그것을 단서로 ‘형태’의 본질에 다가서려 한 것이다.

제2장 에우헤니오 돌스『바로크론』
에우헤니오 돌스는 1882년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돌스는 피카소나 가우디와 마찬가지로 핏속까지 바르코적 요소를 갖고 태어난 비평가였다. 당시는 야콥 부르크하르트가 “바로크 건축은 르네상스와 동일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야한 방언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니체는 "예술이 퇴폐에 빠질 때 바로크가 된다.”라고 하며 르네상스 시기 완성된 고전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 바로크는 열등한 것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던 시기였다. 이에 대한 세기말적 바르셀로나에서 자란 돌스는 이렇게 대든다.
“바로크의 성격은 정상이다. 만일 바로크를 병적이라고 한다면 ‘여성은 영원한 병자이다’ 즉 여성들 모두는 화려한 장식을 좋아하는 공주병환자로 봐야 한단 말인가? 바로크는 고전주의에서 파생한 것이 아니라 낭만주의보다도 훨씬 근본적으로 고전주의 양식과 대랍하는 것이다. 그리고 낭만주의는 결국 바로크적 상수의 전개에서 하나의 에피소드(아류)에 지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고전주의 양식이란 ‘중량감을 지닌 형식’이며, 바로크 양식이란 ‘飛翔’하는 형식‘이다. 고전주의 양식이 질서와 통일을 기본 성격으로 삼는데 비해, 바로크 양식은 혼돈과 모순을 본질로 삼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뵐프린이나 포시용의 바르관을 ‘양식 발전사적 견해’로 규정한다면, 돌스는 ‘양식 본질론적 견해’라고 할 수 있다. 돌스에게 양식은 고전주의에서 바로크로 전개하는 것이 아니다. 고전주의와 바로크는 처음부터 완전히 본질이 다른 두 현상이다. 요컨대 바로크는 ‘역사 양식’ 아니라 ‘문화 양식’이기 때문에 역사의 모든 시대에 걸쳐 모습과 형태를 바구면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제3장 앙리 포시용『형태의 삶』
피카소와 같은 해인 1881년 프랑스 브로고뉴 지방의 디종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그 지방에서 꽤 알려진 판화가로 포시용은 아버지의 아틀리에에서 판화 제작과정을 지켜보며 자랐다. 1913년 리용대학 문학부 교수로 있다가 1925년 소르본 대학으로 옮기고, 1938년에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미술사 강의를 맡게 된다. 2차대전 발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포르의 미학이 생물학과의 유사성을 강조한 나머지 고찰 대상을 미술 자체에서 문화 전반으로, 문화적인 것에서 인간활동 전반으로, 나아가서는 인간에서 자연계 전반으로 끝없이 확대해 감으로써 마침내 전 생명의 역사 속에서 조형예술만의 특성을 매몰시켜 버린데 비해, 포시용의 미학은 자연계는 물론 인간의 일반적인 문화활동과도 명확히 구별되는 창조활동 본질을 탐구함으로써 자율적인 미술사의 영역을 확립했다. 포르가 19세기적인 ‘문화사’의 전통을 이어받은 마지막 사람이었었다면, 포시용은 명백한 20세기 ‘미술사학자’였다.
“예술작품은 물질이면서 동시에 정신이고, 형식이면서 동시에 내용이다..... 그것은 변하기 쉬운 시대의 흐름 속에서 태어나지만 동시에 영원의 세계에 속한다. 또한 개별적이고 국지적이고 독특하지만 동시에 보편적인 증인이기도 하다.... 우리는 항상 형태에서 무언가 다른 의미를 찾으려는 유혹에 빠진다. 요컨대 형태의 개념을 어떤 대상을 재현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이미지 개념과 혼동하고 나아가 기호의 개념과 혼동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 기호란 다른 뭔가를 의미하며, 형태란 자기 그 자체가 의미가 된다.” - 포시용, 「형태의 생명」
포시용은 예술작품이란 어디까지나 그 자체가 내용을 지닌 형태 세계라는 사실을 중시했고, 그러한 세계를 끝가지 견지했다.

제4장 에르빈 파노프스키『도상해석학 연구』
에르빈 파노프스키는 1892년 독일에서 태어나 베르린, 뮌헨,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1921년 함부르크 대학 강사로 시작해서 교수가 되었다. 이 함부르크 시절 도상해석학의 시조하고 할 바르부르크 연구소에서 공부한 것이 그의 방법론 확립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후 나치가 대두하자 1934년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 대학과 뉴욕 대학을 본거지로 삼아 활약했다.
다카시나 슈지는 파노프스키의 ‘도상해석학’에 3 chapter나 할애하고 있다. 그만큼 파노프스키와 도상학은 중요하다. 16세기 피렌체의 화가 프론치노의 ‘비너스와 큐피드/애욕이 알레고리’ 그리고 Bronzino가 디자인한 tapestry 두작품 ‘억울함의 해명’과 ‘플로라’을 도상학으로 설명하는 내용 입이 딱 벌어졌다.

제5장 파노프스키의 도상해석학
제6장 파노프스키 부부『판도라의 상자』

제7장 앙드레 말로『사투르누스 - 고아론』
앙드레 말로는 고야의 화려했던 궁정생활로 대표되는 인생 전반부는 깨끗이 지워버리고 대부분의 사람들 눈에 띄지 않던 만년의 작품만을 문제 삼는다. 고야의 인생 후반부 즉 1790년경부터 그를 엄습한 청력 상실과 궁정생활과의 결별, 사교적이고 쾌활했던 고아는 이 시기 이후 돌변해서 사람을 싫어하고 세상을 등진 사람이 되었다. 게다가 세월과 더불어 화가의 생명인 시력의 위협을 느끼며 끊임없는 불안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제 음침한 사투르누스의 불길한 별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푸생이 그린 裸婦의 그림자에는 관조의 세계가, 렘브란트가 그린 나부의 그림자에는 영원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18세기 나부에는 능욕에 대한 은밀한 공모가 있다. 고야가 그린 ‘누드의 마하’는 전례없는 작품으로, 벨라스케스의 ‘거울 앞에 비너스’의 모작이라고 보는 것은 말도 안되는 추측이다. 확실히 벨라스케스의 나부는 여성으로 바뀐 최초의 여신이며, 그 점에서 특수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 고야는 개성적인 누드를 처음 그린 것이 아니라, 에로틱하지만 관능적이지 않은 나부를 처음으로 그린 것이다.

제8장 앙드레 말로『상상 미술관』
다카시나 슈지는 1974년 일본을 방문한 앙드레 말로와 만나서 겪은 일화를 이렇게 소개하면서 말로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말로는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는 학자라기 보다는 밀림 속에서 유적을 찾아 헤매는 탐험가에 걸맞는 모습이었다. 그러한 ‘행동가’ 말로가 자신의 방에 틀어 박혀 세계 각지의 무수한 예술품 복제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는 정적인 모습은 탐험대원과 도서관의 문헌학자 사이의 거리 못지 않게 그의 예술관의 진폭을 분명하게 시사하는 것이다. ‘상상미술관’의 발상은 바로 그러한 말로의 폭넓은 예술관에서 비롯한 필연적 결과였다.

제9장 한스 제들마이어「브뢰겔의 '마키아'」
제10장 자크 마리탱『예술과 시에서의 창조적 직관』

제11장 케네스 클라크『풍경화론』
미술사학자로서 클라크의 지위가 확고해진 것은 윈저 궁에 보존되어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데생 목록을 작성한 업적 덕분이었다. 그 연구를 토대로 집필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비평사적인 명저다. ‘풍경화론’은 1946년 옥스퍼드 대학 슬레이드 미술사 강좌 담당교수로 부임했을 때 처음으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제12장 리오넬로 벤투리『근대 화가론』

제13장 요셉 간트너『인간상의 운명』
요셉 간트너는 하인리히 뵐프린의 수제자로 뵐프린 사망 후 바젤 대학에서 스위스 뿐이나라 서구 미술사학계 중진으로 활약했다. 간트너는 ‘예술 형식으로서의 미완성’을 표상형식의 해석학적 심리학으로 ‘프레피구라치온’(先形象)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제14장 곰브리치『예술과 환영』
곰브리치는 오스트리아 비인 태생으로 율리우스 폰 슐로서에게 배운 비인학파의 후계자였다. 그러나 나치의 압박을 혐오하여 영국으로 건너갔고, 옥스퍼드의 슬레이드 미술학교 교수와 유니버시키 컬리지 교수를 거친 후 오랫동안 런던대학의 Warburg연구소 소장을 활동했다. 곰브리치는 예술이란 심리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과학적인 예술 연구는 심리학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제15장 곰브리치『예술과 환영』 다시 읽기
‘예술과 환영’은 미술의 역사를 그려진 ‘형태’에 의해서가 아니라 거꾸로 ‘형태’의 지각을 통해 해석하려한 기념비적인 저서이다.

제16장 르네 위그『예술과 영혼』
르네 위그는 그리스 철학을 전공하고 심리학을 연구했다. 게다가 루브르 미술관 학예관으로 오랫동안 실제 작품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곰브리치가 실험심리학을 무기로 ‘지각의 미학’을 주장한데 반해, 위그는 심층심리학이나 언어심리학을 무기로 ‘영혼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제17장 니콜라우스 펩스너『영국 미술의 영국성』
제18장 앙드레 샤스텔『로렌초 호화왕 시대의 피렌체 예술과 휴머니즘』
제19장 기디온의 예술론, '현재에서 영원으로'

제20장 허버트리드의 예술론, '예술과 사회'
조형예술이론에서 리드의 가장 큰 공헌은 사상(idea)보다 도상(icon)이 선생한다는 사실을 역사적-철학적으로 명백하게 입증한 점에 있다. 인간정신이 세계와 관계를 맺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 구체적 이미지를 추상적 관념이나 언어로 만들어 낸 것보다 역사적으로 앞선다는 것이다. 현대가 민주화/평등/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오히려 평균화/일반화/획일화 되어 특이함을 배척하고 상상력을 억압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개탄

제21장 앙리 베르그송의 예술론, 가능성과 현실성
제22장 카시러의 예술론, 인간과 상징

다카시나 슈지, ‘명화를 보는 눈’ (2002:눌와)

다카시나 슈지(高階秀爾), ‘명화를 보는 눈’ (2002:눌와)

본서의 저자는 프랑스에서 서양근대미술사를 전공한 다카시나 슈지(高階秀爾) 도쿄대교수이다. 일본에서는 이와나미문고에서 69년과 71년에 2권으로 출판된 책인데, 한국에서는 2002년 12월에 이 두권을 한권으로 묶어 내용을 1,2부로 나눠서 번역 출간되었다. 저자는 각 지역과 시대별로 주목할 만한 그림 작품을 먼저 선정한 다음 그 그림을 꼼꼼히 분석한다. 거기에 그림이 그려질 당시의 문예사조와 역사적 배경, 화가 개인의 편력을 재밌게 서술한다. 마지막으로 화가에 대한 인물평을 첨부한다. 이런 형식으로 29명의 서양근현대 화가와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나는 그림에 관한한 문외한이다. 그런데 그림에 관심이 많은 아내가 유럽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미술관련 서적 괜찮은거 3권 정도는 보고 가세요. 그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 여행다니는 중에 박물관과 갤러리에서 그림보는 시간이 곤혹일 수 있어요.”

유럽여행 선배인 아내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떤 책을 봐야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 Yes24의 독자서평을 뒤적이다 몇권을 간추렸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보면 최상이지만, 내용이 방대해서 질려버릴 수가 있었다. 그래서 서점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 후 최종 구입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서양그림에 대해 처음 입문하는 생짜배기 초짜가 그림에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 그림의 깊이를 맛볼 수 있도록 해주는 탁월한 책이다. 이 책 한권만 읽고 간다면 유럽배낭여행 다니다 들르는 박물관과 갤러리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유럽 박물관과 갤러리 곳곳에서 이 책에서 설명한 그림을 만나는 재미가 여행의 흥분을 더해줄 것이다. 실제로 책에서만 보던 그림을 바로 코 앞에서 보는 흥분.... 짜릿하다. 그러나 그 그림이 어떤 배경에서 누가.. 왜.. 무슨 의도를 가지고 그렸는지를 모르면... 그냥 종이쪼가리에 물감 처바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알면 보인다. 유럽 다니면서 박물관, 갤러리를 그냥 스쳐지나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위해서라도 이 책만은 읽고 가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신미원씨의 번역도 깔끔하고, 도판도 선명하다. 그래서 기꺼이 별 다섯개를 주는 바이다. 간만에 만난 사서 전혀 돈 아깝지 않은 책이다. 미술에 관한 책을 쓰려면 적어도 이정도는 써야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차를 보면 책 내용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되어 소개한다.

1. 르네상스에서 사실주의까지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철저한 사실주의
산드로 보티첼리 <봄>- 신화적 환상의 장식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성 안나와 성모자>- 천상의 미소
산치오 라파엘로 <작은 의자 위의 성모>- 완벽한 구성
알브레히트 뒤러 < 멜렝콜리아 1>- 빛과 어둠의 세계
디에고 벨라스케스 <궁정의 시녀들>- 붓놀림의 마술
렘브란트 <플로라>- 명암 속의 여신
니콜라 푸생 <사비니 여자들의 약탈>- 다이내믹한 군상
얀 베르메르 <화가의 아틀리에>- 상징적 실내 공간
앙투안 와토 <사랑의 섬으로의 순례>- 그림으로 그려진 연극 세계
프란시스코 데 고야 <벌거벗은 마하>- 꿈과 현실의 관능미
외젠 들라크루아 <알제의 여인들>- 빛나는 색채
윌리엄 터너 <국회의사당의 화재>- 불과 물의 공기
귀스카브 쿠르베 <아틀리에>- 사회 속의 예술가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근대의 서곡

2. 인상파에서 순수추상까지

클로드 모네 <양산을 쓴 여자>- 빛에 대한 갈망
오귀스트 르누아르 <피아노 앞의 소녀들>- 색채의 하모니
폴 세잔 <온실 속의 세잔 부인>- 조형의 드라마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침실>- 불안한 내면 세계
폴 고갱 <이아 오라나 마리아>- 이국적 환상
조르주 쇠라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고요한 시정
툴루즈 로트레크 <물랭 루즈의 포스터>- 세기말의 애수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 여자>- 소박파의 꿈
에드바르트 뭉크 <절규>- 불안과 공포
앙리 마티스 <커다란 붉은 실내>- 단순화된 색면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큐비즘의 탄생
마르크 사걀 <나와 마을>- 회상의 예술
바실리 칸딘스키 <인상 · 제3번>- 추상회화로 가는 길
피레트 몬드리안 <브로드웨이 부기 우기>- 대도시의 조형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