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정보 요약의 달인들은 전부 일본사람이 아닐까... 싶다. 일본 민족성 자체가 정리/요약에 능한게 아닐까? 복잡한 사상과 이론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입문서로 손에 쥐게 되는 책들은 거의 다 일본사람이 쓴 책이다. 내 경우, 서양미술을 공부하면서 접하게 된 첫 책이 바로 高階秀爾(다카시나 슈지)의 ‘명화를 보는 눈’이다. 재미와 통찰, 요약과 정리, 깔끔하고 쉬운 설명... 다카시나 슈지에 반했다. 그러다 번역되어 있는 그의 책을 두권 더 구입했다.
이 책은 저자가 ‘명저 다이제스트’라는 제목으로 잡지에 1년동안 연재한 글을 다듬어 단행본으로 출판한 책이다. 저자는 후기에서 ‘독서보고서’라고 밝히고 있다. 1930년대 이후 유럽의 주요 美術史家/비평가들의 논리와 논문/저서의 핵심을 잘 짚어주고 있다. 총 22장으로 구성되어있는데 먼저 각 미술사가/비평가의 인생사를 몇문장으로 요약한 다음, 중요 저서의 내용과 그 공헌을 설명하고 있어 쉽게 읽힌다. 이 책 한권만으로도 일반인이 미술사 연구에 꼭 읽어봐야할 저서들을 대충 한번 다 훓어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각 chapter별로 읽으면서 줄쳤던 부분을 옮겨본다.
제1장 엘리 포르『형태의 정신』
포르는 틀에 박히지 않은 유연한 感想眼을 갖고 있었다. 이는 그의 본직이 임상의요, 생물학자로서 전문 역사가가 아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기존 미학이나 역사에 의거한 가치판단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이다. ‘감식가’나 역사가가 어떤 작품이나 양식을 마주하고 다른 작품과 상이한 독자적 성격을 부각시키는데 전력을 기울일 때, 포르는 시대나 지역이 멀리 떨어져 있는 미술작품에서 공통된 표현을 찾아내, 그것을 단서로 ‘형태’의 본질에 다가서려 한 것이다.
제2장 에우헤니오 돌스『바로크론』
에우헤니오 돌스는 1882년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돌스는 피카소나 가우디와 마찬가지로 핏속까지 바르코적 요소를 갖고 태어난 비평가였다. 당시는 야콥 부르크하르트가 “바로크 건축은 르네상스와 동일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야한 방언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니체는 "예술이 퇴폐에 빠질 때 바로크가 된다.”라고 하며 르네상스 시기 완성된 고전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 바로크는 열등한 것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던 시기였다. 이에 대한 세기말적 바르셀로나에서 자란 돌스는 이렇게 대든다.
“바로크의 성격은 정상이다. 만일 바로크를 병적이라고 한다면 ‘여성은 영원한 병자이다’ 즉 여성들 모두는 화려한 장식을 좋아하는 공주병환자로 봐야 한단 말인가? 바로크는 고전주의에서 파생한 것이 아니라 낭만주의보다도 훨씬 근본적으로 고전주의 양식과 대랍하는 것이다. 그리고 낭만주의는 결국 바로크적 상수의 전개에서 하나의 에피소드(아류)에 지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고전주의 양식이란 ‘중량감을 지닌 형식’이며, 바로크 양식이란 ‘飛翔’하는 형식‘이다. 고전주의 양식이 질서와 통일을 기본 성격으로 삼는데 비해, 바로크 양식은 혼돈과 모순을 본질로 삼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뵐프린이나 포시용의 바르관을 ‘양식 발전사적 견해’로 규정한다면, 돌스는 ‘양식 본질론적 견해’라고 할 수 있다. 돌스에게 양식은 고전주의에서 바로크로 전개하는 것이 아니다. 고전주의와 바로크는 처음부터 완전히 본질이 다른 두 현상이다. 요컨대 바로크는 ‘역사 양식’ 아니라 ‘문화 양식’이기 때문에 역사의 모든 시대에 걸쳐 모습과 형태를 바구면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제3장 앙리 포시용『형태의 삶』
피카소와 같은 해인 1881년 프랑스 브로고뉴 지방의 디종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그 지방에서 꽤 알려진 판화가로 포시용은 아버지의 아틀리에에서 판화 제작과정을 지켜보며 자랐다. 1913년 리용대학 문학부 교수로 있다가 1925년 소르본 대학으로 옮기고, 1938년에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미술사 강의를 맡게 된다. 2차대전 발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포르의 미학이 생물학과의 유사성을 강조한 나머지 고찰 대상을 미술 자체에서 문화 전반으로, 문화적인 것에서 인간활동 전반으로, 나아가서는 인간에서 자연계 전반으로 끝없이 확대해 감으로써 마침내 전 생명의 역사 속에서 조형예술만의 특성을 매몰시켜 버린데 비해, 포시용의 미학은 자연계는 물론 인간의 일반적인 문화활동과도 명확히 구별되는 창조활동 본질을 탐구함으로써 자율적인 미술사의 영역을 확립했다. 포르가 19세기적인 ‘문화사’의 전통을 이어받은 마지막 사람이었었다면, 포시용은 명백한 20세기 ‘미술사학자’였다.
“예술작품은 물질이면서 동시에 정신이고, 형식이면서 동시에 내용이다..... 그것은 변하기 쉬운 시대의 흐름 속에서 태어나지만 동시에 영원의 세계에 속한다. 또한 개별적이고 국지적이고 독특하지만 동시에 보편적인 증인이기도 하다.... 우리는 항상 형태에서 무언가 다른 의미를 찾으려는 유혹에 빠진다. 요컨대 형태의 개념을 어떤 대상을 재현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이미지 개념과 혼동하고 나아가 기호의 개념과 혼동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 기호란 다른 뭔가를 의미하며, 형태란 자기 그 자체가 의미가 된다.” - 포시용, 「형태의 생명」
포시용은 예술작품이란 어디까지나 그 자체가 내용을 지닌 형태 세계라는 사실을 중시했고, 그러한 세계를 끝가지 견지했다.
제4장 에르빈 파노프스키『도상해석학 연구』
에르빈 파노프스키는 1892년 독일에서 태어나 베르린, 뮌헨,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1921년 함부르크 대학 강사로 시작해서 교수가 되었다. 이 함부르크 시절 도상해석학의 시조하고 할 바르부르크 연구소에서 공부한 것이 그의 방법론 확립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후 나치가 대두하자 1934년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 대학과 뉴욕 대학을 본거지로 삼아 활약했다.
다카시나 슈지는 파노프스키의 ‘도상해석학’에 3 chapter나 할애하고 있다. 그만큼 파노프스키와 도상학은 중요하다. 16세기 피렌체의 화가 프론치노의 ‘비너스와 큐피드/애욕이 알레고리’ 그리고 Bronzino가 디자인한 tapestry 두작품 ‘억울함의 해명’과 ‘플로라’을 도상학으로 설명하는 내용 입이 딱 벌어졌다.
제5장 파노프스키의 도상해석학
제6장 파노프스키 부부『판도라의 상자』
제7장 앙드레 말로『사투르누스 - 고아론』
앙드레 말로는 고야의 화려했던 궁정생활로 대표되는 인생 전반부는 깨끗이 지워버리고 대부분의 사람들 눈에 띄지 않던 만년의 작품만을 문제 삼는다. 고야의 인생 후반부 즉 1790년경부터 그를 엄습한 청력 상실과 궁정생활과의 결별, 사교적이고 쾌활했던 고아는 이 시기 이후 돌변해서 사람을 싫어하고 세상을 등진 사람이 되었다. 게다가 세월과 더불어 화가의 생명인 시력의 위협을 느끼며 끊임없는 불안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제 음침한 사투르누스의 불길한 별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푸생이 그린 裸婦의 그림자에는 관조의 세계가, 렘브란트가 그린 나부의 그림자에는 영원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18세기 나부에는 능욕에 대한 은밀한 공모가 있다. 고야가 그린 ‘누드의 마하’는 전례없는 작품으로, 벨라스케스의 ‘거울 앞에 비너스’의 모작이라고 보는 것은 말도 안되는 추측이다. 확실히 벨라스케스의 나부는 여성으로 바뀐 최초의 여신이며, 그 점에서 특수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 고야는 개성적인 누드를 처음 그린 것이 아니라, 에로틱하지만 관능적이지 않은 나부를 처음으로 그린 것이다.
제8장 앙드레 말로『상상 미술관』
다카시나 슈지는 1974년 일본을 방문한 앙드레 말로와 만나서 겪은 일화를 이렇게 소개하면서 말로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말로는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는 학자라기 보다는 밀림 속에서 유적을 찾아 헤매는 탐험가에 걸맞는 모습이었다. 그러한 ‘행동가’ 말로가 자신의 방에 틀어 박혀 세계 각지의 무수한 예술품 복제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는 정적인 모습은 탐험대원과 도서관의 문헌학자 사이의 거리 못지 않게 그의 예술관의 진폭을 분명하게 시사하는 것이다. ‘상상미술관’의 발상은 바로 그러한 말로의 폭넓은 예술관에서 비롯한 필연적 결과였다.
제9장 한스 제들마이어「브뢰겔의 '마키아'」
제10장 자크 마리탱『예술과 시에서의 창조적 직관』
제11장 케네스 클라크『풍경화론』
미술사학자로서 클라크의 지위가 확고해진 것은 윈저 궁에 보존되어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데생 목록을 작성한 업적 덕분이었다. 그 연구를 토대로 집필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비평사적인 명저다. ‘풍경화론’은 1946년 옥스퍼드 대학 슬레이드 미술사 강좌 담당교수로 부임했을 때 처음으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제12장 리오넬로 벤투리『근대 화가론』
제13장 요셉 간트너『인간상의 운명』
요셉 간트너는 하인리히 뵐프린의 수제자로 뵐프린 사망 후 바젤 대학에서 스위스 뿐이나라 서구 미술사학계 중진으로 활약했다. 간트너는 ‘예술 형식으로서의 미완성’을 표상형식의 해석학적 심리학으로 ‘프레피구라치온’(先形象)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제14장 곰브리치『예술과 환영』
곰브리치는 오스트리아 비인 태생으로 율리우스 폰 슐로서에게 배운 비인학파의 후계자였다. 그러나 나치의 압박을 혐오하여 영국으로 건너갔고, 옥스퍼드의 슬레이드 미술학교 교수와 유니버시키 컬리지 교수를 거친 후 오랫동안 런던대학의 Warburg연구소 소장을 활동했다. 곰브리치는 예술이란 심리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과학적인 예술 연구는 심리학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제15장 곰브리치『예술과 환영』 다시 읽기
‘예술과 환영’은 미술의 역사를 그려진 ‘형태’에 의해서가 아니라 거꾸로 ‘형태’의 지각을 통해 해석하려한 기념비적인 저서이다.
제16장 르네 위그『예술과 영혼』
르네 위그는 그리스 철학을 전공하고 심리학을 연구했다. 게다가 루브르 미술관 학예관으로 오랫동안 실제 작품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곰브리치가 실험심리학을 무기로 ‘지각의 미학’을 주장한데 반해, 위그는 심층심리학이나 언어심리학을 무기로 ‘영혼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제17장 니콜라우스 펩스너『영국 미술의 영국성』
제18장 앙드레 샤스텔『로렌초 호화왕 시대의 피렌체 예술과 휴머니즘』
제19장 기디온의 예술론, '현재에서 영원으로'
제20장 허버트리드의 예술론, '예술과 사회'
조형예술이론에서 리드의 가장 큰 공헌은 사상(idea)보다 도상(icon)이 선생한다는 사실을 역사적-철학적으로 명백하게 입증한 점에 있다. 인간정신이 세계와 관계를 맺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 구체적 이미지를 추상적 관념이나 언어로 만들어 낸 것보다 역사적으로 앞선다는 것이다. 현대가 민주화/평등/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오히려 평균화/일반화/획일화 되어 특이함을 배척하고 상상력을 억압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개탄
제21장 앙리 베르그송의 예술론, 가능성과 현실성
제22장 카시러의 예술론, 인간과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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