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한겨레신문사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한겨레신문사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6년 7월 7일 목요일

발굴 한국현대사 인물 1,2,3, 한겨레신문사 출판부

발굴 한국현대사 인물 1,2,3, 한겨레신문사 출판부
      
* 아~씨, 블로그에 올리기위해 바닥에 책 깔아 놓고 사진 찍고 있는데... 3권이 없다. 모모씨한테 빌려줬다가 돌려받질 못했다.. 그 인간한테 책 빌려주는게 아닌데...ㅋㅋ 다른건 그냥 잘 줘버리면서 왜 책에 대해선 이렇게 집착을 하는지 모르겠다.
대학시절 한겨레신문에서 ‘20세기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세계사 인물 100명을 선정하여 각 인물에 대해 기획연재를 했다. 소개할 인물이 세계사에만 있으랴... 한국 현대사에도 소개할 인물들이 많다. 우리 현대사에서 다시 확인해볼 필요가 있는 사람들을 선택해서 한겨레신문이 기사로 싣기 시작했는데 반향이 대단했다. 제목 그대로 ‘발굴’ 한국현대사 인물이다. 발굴했다는 건 그 전제가 묻혀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묻혀있었다는 뜻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역사에 사장된 인물이라는 의미일게다. 해방이후 좌익으로 분류되거나 자진 월북이든 강제 납북이든, 급진세력이든... 그것도 아니면 기득권세력에 밉보여 찍힌거든.... 다양한 사연을 가진 체 의도적으로 파묻힌 인물들이 많다. 90년대 한국에도 민주화의 거대한 흐름이 자기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주류 역사 기록에서 내팽개쳐진 인물들이 발굴되어 소개 되기 시작했다. 거의 2년 넘게 연재되던 것을 단행본 3권으로 묶어 출간했다. 각 인물의 면면은 신문 타이틀 달 듯이 한 어구로 그들의 삶을 요약해 놓은 제목만 보더라도 그 사람들의 삶을 얼마든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신문기자들의 요약과 정리, 타이틀 뽑는 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0세기 사람들'과는 다르게 '발굴 한국현대사 인물'에서는 나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 거의 반이나 되었다. 20대 초반 대학도서관서 이 책 3권을 읽다가 모르는 인물이 나올 때마다 역사에 무지한 죄인이라는 미안함에 부끄러워졌던 기억이 난다.
아래는 ‘발굴 한국 현대사 인물 1,2,3’에 실린 명단과 인물별 제목이다.
주시경- 한글시대를 연 첫 국어학자
신채호- 민족주의 정신의 넒은 그릇
정약용- 봉건의 끝, 최초의 근대인
고판례- 증산교 법통 이은 여장부
정종명- 혁명과 사랑으로 불태운 젊음
남자현- 중국 항일전선을 누비다
안희제- 민족기업의 전형을 만들다
안창남- 조선비행사, 처음 하늘을 날다
전형필- 문화재 유출 막은 거부의 자존
이극로- 민족어가 없으면 민족이 없다
이현상- 지리산 누비던 빨치산 대장
김철수- 살아있는 조선공산주의 운동사
인정식- 조선 농업경제학의 기초를 세우다
이재유- 30년대 좌익운동의 신화
장지필- 백정 손에 치켜든 형평의 깃발
서태석- 암태도에 소작농들의 함성
차금봉- 철도 노동자에서 조선공산당 당수까지
전태일- 몸 살라 지펴낸 노동해방의 불꽃
조봉암- 진보는 용공, 통일은 간첩
조용수-『민족일보』, 교수대에 서다
장준하- 유신시대 재야대통령
이종찬- "군인은 정치에 중립을"
유병진- 법의 정신을 심다
최능진- 이승만에 대한 도전은 내란죄?
신불출- 최초, 그리고 최고의 만담가
나운규- 한국영화의 화려한 시작
김순남- 40년만에 다시 듣는 '산유화'
정응민- '보성소리'의 외곬
우장춘- 헐벗은 식탁을 기름지게 하다
김용관- 과학을 대중 속에 불러오다
이명래- 고약, 서민들의 만병통치약
경봉스님-한국 선종의 큰 봉우리
김교신- 교회 밖에서 믿음을 찾다
박중빈- 원불교 종사를 열다
이용익- 한말거부의 신화적 입지전
유일한- 이렇게 벌고 이렇게 쓰라
윤상은- 첫 지방은행, 마지막 민족은행
박승직- 한국 재벌탄생의 전사(前史)
이회영- 봉건을 깨친 '지배 없는 세상'의 꿈
박 열 - 반역과 야합, 굴절하는 아나키즘
유 림- 독립노동당 유림 후보는 '공산당 사촌'?
김시현- 한국 최후의 레지스탕스
이주하- 조선공산당에서 남조선노동당까지
한위건- 일제하 사회주의운동 최고이론가
김태준- 한 국문학자의 혁명전선
이덕구- "박박얽은 그 얼굴 덕구 덕구 이덕구"
김성숙- '붉은 승려'의 항일투쟁, 그리고 야당정치까지
이상룡- 식민조국 등진 망명객, 유해되어 돌아오다
정이형- 식민시대 태반을 감옥에 묻어두고
장재성- 비운에 간 광주학생운동의 주역
김병로- 법의 양심, 그 좁은 길을 가다, 가인!
김성주- 50년대, 정치하수인의 불운한 종말
모윤숙- 화려한 개인사, 뒤틀린 한국사
이기영- 복원되는 식민시대 농민문학
임 화- 카프의 서기장, 또는 미제의 스파이
강경애- 30년대 리얼리즘문학의 한 정점
이용악- 망국 유랑민의 시
송 영- 노동자의 삶을 무대에 올리다
김유영- 스크린에 그린 식민지현실
안기영- 민요가 새 생명을 얻다
이응로- 파리에 묻은 망명화가의 붓
이여성- 복식사와 미술사장르를 열다
백남운- 마르크스주의 조선경제사의 시작과 완성
도유호- 고고학연구 첫 세대
최명학- 의학과정에 해부학이 등장하다
김재준- 청빈, 자유혼, 선비정신
김창준- 민중신학 이전의 민중신학자
길선주- 식민사회 뒤안길의 말세론
안석주- 만평의 펜촉으로 제국의 심장을 겨누다
김우진- 봉건과의 싸움 그 연극적 결말
박길룡- 화신, 장안의 명물, 조선의 긍지
김복진- 복권되는 첫 현대조각가
박종기- 천민의 신화, 대금의 명인
김사량- 한 낭만주의자의 혁명과 문학
이미륵-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
백 석- 샛별 같은 모국어에 실린 민족현실
홍명희- 분단벽 베고 누운 장편소설 『임꺽정』
김창숙- 대학교정에 숨쉬는 유학자의 뜻
고유섭- 근대미술 이론의 수원지
김광진- 식민지 반봉건론의 기치를 들다
이상백- 농구선수, 사회학자, 그리고 IOC 위원
전경무- 동양에서 온 작은 거인
신한승- 민족무술 택견을 되살리다
강상호- 진주 천석꾼 집안에 '새(新) 백정'났다
강주룡- 한 고무공장 여성노동자의 싸움
용성스님- "승려도 일하고 먹어야 한다"
이민규- 인술의 길에서 교육의 길로
정율성- 「중국인민해방군가」의 작곡자
김원봉- 공포의 이름 '테러리스트' 김원봉
윤세주- 조선의용대의 '최고영도자'
양세봉- "독립 못 이룬 나는 민족의 죄인"
여운형- 신화로 남은 마지막 큰 정치가
김약수- 분단정권이 만든 작품, 국회프락치
윤장혁- 대구폭동의 주범, 대구항쟁의 영웅
김용중- 이역만리에 묻은 중립화의 꿈
이종률- 반제, 반봉건, 반매판의 민족사인
배성룡- 공산주의와 민족주의 사이
김문심- 60년 교원노조운동의 중심
이수병- "인혁당은 도깨비인가"
김경숙- 유신의 몰락을 알리는 한 '여공'의 죽음
윤상원- 5월 광주에 들불로 타오르다
조영래- 탁월한 인권변호사, 발군의 변혁운동가

한겨레신문 문화부 편, 20세기 사람들, 한겨레신문사

한겨레신문 문화부 편, 20세기 사람들, 한겨레신문사

20세기가 저물어가던 90년대 중반 한겨레신문사 문화부에서 동서양, 보수와 진보, 정치와 경제, 문화와 스포츠등에서 지난 100년간 우리가 상식적으로 꼭 알아야 할 인물 100명을 선정했다. 각 인물에 대해서 3장정도 분량으로 정리한 내용을 한겨레신문에 2년동안 기획연재를 했다. 그걸 1995년 2권의 책으로 출판했다. 시대의 흐름을 알려면 각 분야에서 뛰어났던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이 굉장히 주효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무엇보다 인물 중심으로 현대 세계사를 꿰뚫어볼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준다. 복잡하고 분량 많은 평전 읽기에 섣부르게 덤벼들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도 역사적 인물 100명에 대해 이토록 간략하고 핵심만 짚어낸 요약판 傳記라면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본서를 통해 20세기 인물들을 섭렵해보자. 우리 시대 인물들을 모른 체 현시대와 미래를 논하는 것은 정말이지 쪽팔리는 일이다. 최소한 요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절판된 책이나 헌책방에서는 쉽게 구입할 수 있다.
100명의 명단을 살펴보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빌헬름 뢴트겐, 라이트 형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막스 베버, 페르디낭 드 소쉬르, 베네데토 크로체, 파블로 피카소, 헨리 포드, 데이비드 그리피스, 마거릿 생거, 알프레드 베게너, 막심 고리키, 레닌, 로자 룩셈부르크, 제임스 조이스, 프란츠 카프카, 발터 그로피우스, 모한다스 간디, 루 쉰, 게오르크 루카치, 에멀린 팽크허스트, 베르톨트 브레히트, 이사도라 덩컨, 아르놀트 쇤베르크, 마리아 몬테소리, 버지니아 울프, 스탈린,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베이브 루스, 안토니오 그람시, 디에고 리베라, 가브리엘 샤넬,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알렉산더 블레밍, 존 케인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에드윈 허블, 아돌프 히틀러, 프랭클린 루스벨트, 오청원, 월트 디즈니, 조지 갤럽, 히로히토, 에드거 스노, 월리스 커러더스, 호 치민, 폰 노이만, 에바 페론, 티토, 마오쩌둥, 버트런드 러셀, 장 모네, 김일성, 왓슨-크릭, 마릴린 먼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가말 압델 나세르,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 프란츠 파농, 교황 요한23세, 에르네스토 게바라, 휴 헤프너, 파트리스 루뭄바, 장 폴 샤르트르, 피터 베넨슨, 마틴 루터 킹, 미셸 푸코, 토머스 쿤, 비틀스, 레이 크록, 마거릿 미드, 칼 포퍼, 데오도르 아도르노, 야세르 아라파트, 랠프 네이더, 데이비드 오길비, 마쓰시타 고노스케, 빌리 그레이엄, 데즈카 오사무, 요제프 보이스, 빌리 브란트, 올로프 팔메, 살바도르 아옌데, 펠레, 데이비드 맥타가트, 박정희, 오쇼 라즈니쉬, 루홀라 호메이니, 덩 샤오핑, 넬슨 만델라, 룰라 다 실바, 레오나르두 보프, 가르시아 마르케스, 샘 월튼, 미하일 고르바초프, 스티븐 호킹, 빌 게이츠, 리고베르타 멘추, 테드 터너
이상 100명이다. 이 100명 중에 모르는 사람이 몇 명있는지 한번 확인해보라. 아는 사람이 몇 명인지를 확인하고 있다면 좀... 반성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무식하다고 핀잔을 주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다. 다만 우리 시대에 대해 고민 좀 하고 살자는 부탁을 하고 싶을 뿐이다.

2016년 7월 6일 수요일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 한겨레신문사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 한겨레신문사

1989년 10월 한국 최초의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이 창간되었다. 당시 고2였던 나는 용돈에 상당한 부담이 되었지만 정기구독을 신청했다. 그나마 조금 일찍 세상에 눈 뜨기 시작한건 80년대 중반 암울한 시대상황 때문이기도 했고, 집근처에 있는 영남대와 형들의 영향도 컸다. 그 때는 하루가 멀다하고 데모였다. 최류탄 가스가 시내를 다 뒤덮어 켁켁거리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알게된 시사저널이 망가졌다. 몇 년전 시사저널이 삼성에 백기투항한 사건이 있었다. 창간정신을 주장하며 반발하던 시사저널 기자들이 쫓겨나서 만든 주간지가 ‘시사人(인)’이다. 아무튼 고교졸업하고 대학다닐 때 한겨레신문에서도 주간지를 창간했다. 역시나 당시 시사저널의 성공으로 각 언론사마다 시사주간지를 경쟁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한겨레21’은 단연 돋보였다. 한겨레21을 대학 때 정기구독하면서 ‘정문태’라는 기자의 기사를 자주 접하게 되었다. 한겨례21 정식 기자도 아닌거 같은데... 프리랜서라고 하기에는 아시아 상황에 대해서 너무 전문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라 눈여겨보고 있었다. 한번은 2001년도인가 그의 글을 읽다가 발견한 이메일 주소로 감사와 격려의 편지를 보낸 적도 있다.(나는 이런 짓 잘하는 인간이 아니다...ㅎㅎ내가 그의 글에 얼마나 감동했으면 그랬겠는가)

정문태기자
       
정문태기자의 글에는 아시아인을 향한 연대의식과 연민이 구구절절히 배어있다. 한겨레21에 기고했던 내용을 토대로 취재 뒷담화까지 포함해서 2004년 단행본으로 출간한 책이 ‘전쟁취재 16년의 기록’이다. 글을 읽는 내내 놀랐다. 먼저는 아시아 역사에 대한 나의 무식함에 놀랐고, 한국만 겪은 줄 알았던 격동을 아시아의 거의 모든 나라가 한국과 비슷한 역사적 상흔을 가졌다는 사실에 놀랐다. 특히 수하르토의 발리 학살은 우리 광주사태와 너무나 닮아있었다. 나의 역사적 지식은 유럽과 미국, 아시아에서는 한중일에 편중되어 있었다. “韓中日 역사만 알면 아시아 역사는 다 안거다.”라는 내 생각은 철저한 오만이자 편견이었다. 인도, 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스리랑카/타밀, 파키스탄, 아프카니스탄, 인도네시아/티모르/아체... 중앙아시아와 아랍권 국가들... 이들에 대한 무식과 무관심은 결국 아시아에서 한중일 3국을 제외한 나의 무시의 소치임이 판명된 것이다.
그렇다. 무식은 무시다.
정문태의 글을 읽으며 나뿐만 아니라 한국의 아시아에 대한 무관심과 무시를 참회한다. 정문태기자는 위험한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주워들은 정보를 조합해 기사를 만들어내는 기자가 아니다. 그는 언제나 현장에 있다. 그리고 현장에서 경험하고 직접들은 내용이 아니면 쓰지 않는다. 전투현장에서 격은 수많은 사건들을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것을 기자로서 ‘죄악시’하는 사람이다. 그는 기사로만 승부한다. 우리 시대에 이런 전선기자(정문태는 ‘從軍(종군)’기자라는 용어를 극도로 싫어한다. 군대의 보호를 받으며, 군대를 따라다니며, 군대가 주는 정보를 의지하여, 군대의 비리와 권력의 잘못을 합리화시켜주는 군에 종속된 從軍기자이기를 거부한다)를 한 명이라도 갖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르겠다.
베트남 전쟁의 의미와 양상, 그리고 미국의 세계지배 전략과 한국의 입장에 대해 미국 언론이 전해주는 내용만 받아쓰기하여 보도하던 1970년대 한국언론/정치상황에서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는 사람들에게 충격과 더불어 베트남전과 미국, 세계를 보는 눈을 띄워주는 의식있는 민주시민의 필독서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문태의 ‘전쟁취재 16년의 기록’은 바로 우리 옆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관해 AP,로이터,CNN이 전해주는 내용만을 ‘받아쓰기’해서 전해주는 현재 한국언론 상황에서 리영희교수의 책만큼이나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 판단된다. 한겨레21에서는 싣지 못한 자기 내면의 이야기도 취재 내용에 곁들여 같이 쓰고 있는데, 읽는 내내 ‘나는 그래도 상당히 객관적인 세계정세를 분석하고 있고, 주류언론에서 사태를 왜곡보도하는 내용도 어느정도 잡아낼 수 있다’는 내 생각이 교만한 생각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프카니스탄, 인도-카슈미르, 팔레스타인, 코소보, 예멘, 인도네시아-아체, 캄보디아, 라오스, 버마(미얀마).... 독재정권, 민족주의의 탈을 덮어쓴 체 인종청소를 정당화하는 군벌들... 이를 이용해먹는 유럽과 미국, 특히 미국의 지저분함은 상상이상이다. 이런 내용을 블로그에서 다 언급할 수는 없고, 궁긍한 사람은 책을 사서 읽어보기 바란다. 최근 출간된 ‘역사는 현장이다’ 이 책도 읽고 싶은데 한국갔다 오는 사람한테 부탁해볼까 싶다.
정문태기자의 아프카니스탄 기사 내용 중 몇부분만 추려서 옮겨본다.
탈리반 최고지도자 물라 오마르는 1994년 출발 때부터 출처를 모를 막대한 US 달러를 뿌려댔다. 무급 구세군이라 주장했던 탈리반 전사들은 갓 은행에서 인출한 듯 빳빳한 US 달러를 자랑스레 흔들고 다녔다. 이건 탈리반의 태생적 한계이기도 했다. 탈리반은 미국이 창조해낸 부패한 ‘작품’일 뿐이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불법 ‘Iran 혼란조성용 자금’ 가운데 일부를 파키스탄 정보국(ISI)을 거쳐 물라 오마르에게 지급함으로써 탈리반은 태어났다. 1990년대 들어 CIA는 ‘러시아 남하정책 봉쇄’라는 미국의 전통적인 對중앙아시아 전략과 함께 가스/원유를 낀 경제적 잇속을 계산하며 아프카니스탄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CIA는 對소비에트 항쟁 주역들 사이에 벌어진 정쟁상태를 장악할 수 있는 새로운 대체세력, 다시 말해 미국에 이익을 안겨줄 대안을 염두에 두고 탈리반을 설계했다. 그리고 미국의 이슬람 맹방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뒷돈을 대고, 파키스탄이 병참기지 노릇을 하면서 탈리반을 키워냈다.
그런데 2010년 현재 미국은 그들이 실컷 키워낸 탈리반에 대해 사과 한마디 없이 처단해야할 테러분자들이라고 열을 올리며 탈리반을 대상으로 전쟁을 펼치고 있다.
"냉전시절, 미국 대신 아프카니스탄이 소비에트(소련)와 싸웠다. 미국 대신 아프카니스탄이 전쟁터가 됐고, 미국 대신 아프카니스탄 사람들이 죽었다. 그러나 소비에트군이 철수하자, 미국은 사회복구 약속도 경제지원 약속도 모두 팽개치고 발을 뺐다. 해서 내전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에 있다." - 불하누딘 랍바니(Burhanuddin Rabbini) 대통령, 1997년 인터뷰에서 -
 
1990년대 아프카니스탄 전쟁은 적도 동지도 없는 국제사회를 증명하는 혼잡한 대리전이었다. 미국은 전통적인 러시아 남하정책 봉쇄와 원유를 낀 중앙아시아로부터 경제적 이권을 노려 개입했고, 파키스탄은 혈통이 같은 파슈툰족(탈리반)으로 아프카니스탄을 장앙해 중앙아시아 진출 교두보를 삼고자 개입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 정책을 지원하는 대가로 한계에 이른 왕실 유지와 중앙아시아 원유사업 기득권을 얻고자 각각 탈리반을 지원했다. 이란은 수니파 근본주의 탈리반 팽창을 막고자 같은 시아파 하자리족 헤즈비 와흐닷을, 인도는 탈리반을 쥐락펴락하는 파키스탄 영향력의 확대를 막고자 마수드의 자미아티 이슬라미를, 그리고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탈리반식 근본주의 유입을 막고자 핏줄이 같은 도스텀과 마수드를 각각 지원해왔다. 러시아는 그런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을 돌봐주며 동시에 중앙아시아로부터 미국 영향력을 저기하기 우해 마수드를 도왔고, 프랑스는 전통적인 친프랑스 성향을 보여왔던 마수드를 지원하는 대신 보석을 비롯한 천연자원을 둘러싼 경제적 이권을 노렸다. 터키는 중앙아시아 일대를 포함하는 대터키(Great Turkey) 개념 실현을 염두에 두고 핏줄이 같은 우즈베크계 도스텀 뒤를 밀었도 중국은 신장-위구르지역 이슬람 분리독립 단체들과 탈리반이 접속하는 걸 차단하기 위해 마수드를 밀었다. 아프카니스탄 전쟁에 개입한 이들 나라는 군자금과 군수품은 말할 것도 없고 군사고문관까지 각 진영에 파견했다. 이래도 아프카니스탄 전쟁을 ‘내전’이라 부를 수 있는가?


2016년 6월 30일 목요일

박원순, 내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한겨레신문사

주류 기득권세력 입장 볼 때, 언제나 삐딱하게 대들면서 자신의 패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찔러대는 비주류는 일소해야할 죽여 마땅한 눈에 가시같은 존재들이다. 끊임없이 특이한 발상과 비유로 주류 제도권에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못하는 논리들로 무장한 체 도덕적 청렴성까지 겸비한 인물이 대들 때면 주류들은 이 비주류 인물을 죽이지 못해 안달난다. 결국 주류 기득권은 비주류 삐딱이를 법이라는 합법적(?) 살인도구로 처형한다. 이름하야 ‘사법살인’이다. 특기할 만한 점은 주류는 언제나 패거리를 지어 Teamwork을 이루는 반면에 비주류는 언제나 독고다이다. 그러다보니 '쪽수'라는 힘의 논리에 의해 죽어간 고결한 비주류가 역사에는 너무 많다. 박원순 변호사는 법 전공자 답게 역사 속에서 독고다이로 죽어간 비주류의 흔적을 찾아 10명의 삶을 추적한다.
1.그리스 기득권 주류세력 소피스트들의 무식함을 ‘니 자신이 뭘 모르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라’고 만천하에 논리로 다 까벌여 결국 주류 기득권에 의해 택도 아닌 죄목으로 소송당해 법에 의해 죽어간 소크라테스
2.바리새인과 서기관, 유대종교 지도자들이라는 기득권에 둘러쌓여 그들의 회칠한 무덤같은 패부를 들춰내다 정당하지도 못한 철차와 로마 공권력의 묵인을 통해 십자가 처형당한 예수
3.영국에 빌붙어 프랑스를 팔아먹고선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부르고뉴파와 정치권력에 빌붙은 교회권력자들에 의해 말도 안되는 사법처리를 받고 화형당한 순전한 잔 다르크
4.헨리8세과 그 권력 앞에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린 기생충들 앞에서 반대의사는 표시 못하고 ‘침묵’함으로 양심을 표현하고자한 토마스 모어... 결국 이 탁월한 법률가/신학자/행정가를 주류 기득권세력은 런던탑에서 목잘라 처형했다.
5.타락한 중세교회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비난의 화살을 돌릴 대상을 찾아 ‘마녀사냥’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페이스에 말려들어 교회를 욕할 생각은 못하고 모든 문제의 원인을 ‘마녀’들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무지막지한 어거지 항목으로 잡아들여진 여성들이 말도 안되는 죄목으로 화형당했다.
6.망원경을 발명해서 지구의 자전과 태양 중심의 공전이라는 천체물리의 진실 알게된 갈릴레이 갈릴레오... 이 비주류를 향해 주류는 법으로 ‘아가리 닥치고 있어’라는 판결을 결국 받아낸다.
7. 1차대전의 패전 원인을 너무나 많이 품고 있던 프랑스 주류 기득권세력에게 패인을 떠넘기기 위해 희생양으로 유대인 드레퓌스는 너무나 적합하고 만만한 인물이었다. 여론조차 프랑스의 자존심을 위해 드레퓌스가 군사 정보를 독일군에 넘겨서 전쟁에서 졌다고 몰아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드레퓌스 사건은 에밀 졸라 같은 프랑스의 위대한 양심들이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덤볐기에 사필귀정으로 바로 잡혔다. 기득권의 비주류 죽이기 사건의 전형이다.
8. 2차대전 당시 프랑스에 들어선 독일 괴뢰정부 Vichy정권의 권력자 페탱장군, 그 재판과정은 권력과 이권 앞에 인간들이 얼마나 지저분해 질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그래도 프랑스는 독일 패전 후, 철저한 과거청산작업을 통해 비시정부 관련 인사들을 솎아내서 역사를 바로잡았다. 반면에 우리는 일제청산.. 아직 말도 못꺼낸다. 아직도 대한민국의 주류는 그 친일파들의 후예들이기 때문이다. 누가 자기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욕하는데 가만 있을 후손들이 있겠는가. 이 효에 충실한 인간들 때문에 한국역사는 질곡의 역사가 되어 버렸다.
9. 미국 원자폭탄 제작과정에서 중요기밀을 소련에 넘겼다는 간첩죄로 기소된 로젠버그 부부, 음해였지만 미국 정부와 FBI는 로젠버그 집안의 내부 갈등을 이용해 서로 고발하고 위증하게 해서 멀쩡한 로젠버그 부부를 간첩으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반공산주의의 시대 분위기가 결국 이 부부를 죽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역시 살아있는 양심들의 활동은 눈부시다.
10. 고상한 척하는 문학 주류사회가 D.H.Lawrence의 ‘차탈레 부인의 사랑’을 외설로 몰아가는 과정은... 또 그 재판과정은 위의 7가지 사례들과 똑같이 진행된다. 주류 문학의 비주류문학 죽이기!
박원순 변호사는 위 10가지 사건을 ‘세기의 재판이야기’라는 부제로 차분히 설명한다.
주류 기득권의 비주류 죽이기...
이게 이 책의 진짜 주제라 할만하다.
왜 이 책을 보는데, 노무현이 자꾸 떠오를까... 희얀하네..ㅎ

2016년 6월 19일 일요일

정운영, 레테를 위한 비망록, 한겨레신문사


2005년 9월 토요일 아침 프레시안을 읽다가 부고를 보았다. 24일 오전 향년 62세 신부전증으로 사망, 삼성서울병원 27일 발인...  그의 부고기사를 읽고 못내 아쉬웠다. 한번은 꼭 만나봤어야 할 사람이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정운영의 글을 처음 접한 때가 고교시절이었다. 한겨레신문이 창간되고 ‘전망대’라는 고정칼럼을 통해 그의 글을 간간히 읽으면서 ‘글 잘 쓰네...’하는 생각을 했다.(당시 고등학생이었던 89년도에 시사저널이 창간되었는데, 나는 2년 동안 시사저널을 정기구독하면서 한겨레신문보다는 시사저널의 팬이되어 당시 시사저널 고정 칼럼니스트였던 박권상,한승주,김훈,한완상,최일남 칼럼에 몰입해 있었다. 그리고 대구에서는 한겨레신문 구하기도 힘들었다) 대학 입학해서 서울 올라와서는 한겨레신문 애독자가 되었다. 설교도 일년 52주 중에 3-4번은 홈런치는데.. 칼럼리스트도 일년에 서너번은 명칼럼을 쓸 수 있다. 그런데 정운영의 칼럼은 볼 때마다 이건 홈런.. 최소 2루타였다. 91년 한해동안 정운영의 칼럼에 푹 빠져지냈다. 학교 도서관에 비치된 한겨레신문 정운영칼럼(전망대)부터 보는 버릇이 생겼다. 전공이 정치외교라 정치경제를 전공한 그의 글이 나한테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하나의 현상을 분석하고 설명하는데 동원되는 그의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에 찬탄을 보내게 되었다. 그의 논리는 굉장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 치열한 논리를 따뜻한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감싸 놓은 글솜씨에 입이 딱벌어졌다. 그 때 생긴 소원이 ‘나는 언제쯤 정운영처럼 이정도 수준의 글을 쓸 수 있을까...’ 너무 탁월한 실력 앞에서는 본받고자 하기 보다는, 아예 기가 질려 닮고자하는 엄두를 못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운영의 칼럼을 꾸준히 읽어나가길 십여년... 나도 모르게 서서히 글쓰기 내공이 쌓이기 시작했다. 좋은 설교를 하려면 좋은 설교를 많이 들어봐야 된다. 마찬가지로 좋은 글을 쓰려고 하면 좋은 글을 많이 읽어봐야 한다. 정운영의 글은 나로하여금 기가 질리게 만들었지만 내 글쓰는 내공을 쌓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정운영선생은 거의 격년마다 자기 칼럼을 손봐서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했다. 책이 나오는 족족 사서 읽기 시작했다. 물론 신문에서 이미 읽은 글이 대부분이지만 그의 글은 책으로 소장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기에 기꺼이 구입했다. 이미 절판된 책은 헌책방을 뒤져서라도 손에 넣었다. 그의 지적 편력을 살펴보면 정운영의 사고방식과 사상의 스펙트럼을 유추해볼 수 있다. 정운영선생은 조흥은행 창업주의 동생을 아버지로 두고 있다. 대구에서 경북중학교를 나온 정운영은 아버지를 여인 후 어머니 고향인 충남 온양에서 고교를 마친다. 고교시절에는 범생이기 보다는 조금 막나가는 온양에서 유명한 학생이었다. 재수 끝에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하고 써클을 조직하고는 이론가로서 자질을 닦기 시작한다. 졸업 후 벨기에 루뱅대학에서 마르크스의 이윤률 저하 경향의 법칙이 최근 미국 100년의 역사에서 타당성을 가지는지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하고 돌아온 정치경제학의 대가 두사람 김수행(현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와 함께 한신대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의 부흥을 꿈꾸다가 학내개혁을 주창하가 쫓겨나게 된다. 이후 학자의 길은 잠시 접고 한겨레창간과 함께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 때가 그의 글쓰기 전성기가 아닌가 싶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 명지대에서 가르치면서 몇년전엔 MBC 100분 토론 사회자로 활동했다. 나는 그의 목소리에도 반했다. 중저음의 차분한 목소리는 그의 글과 똑같은 분위기였다. 배고픈 한겨레신문사를 나와 재벌언론 중앙일보사로 옮겨간 것에 대해 왈가불가 말이 많다. 그의 변질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의 노선이 조금 바뀐거 같아 서운하기는 하지만, 철두철미한 글쓰는 태도와 행간에 배어있는 그의 인격은 여전했다. 나또한 그의 칼럼내용 모두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논리전개방식과 어투, 사람에 대한 애정,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그의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 현학적이긴 한데 독자의 무식함을 자존심상하게 나무라지 않는 배려, 나와 코드가 맞는 좌파적인 사고방식, 사태를 특이한 시선으로 분석하는 삐딱함.. 이 모든 것을 나는 사랑한다. 어설프지만 나의 글쓰기를 훈련하는데에는 정운영선생에게 진 빚이 크다. 기회가 되면 꼭한번 찾아가서라도 만나보고 싶었는데... 지병을 앓고 있는 줄 알았으면 E-mail보낸 후 한번 찾아 뵐 것을... 아쉽다. 故人의 죽음을 애도하며.... 2005년 9월 27일 鄭雲暎선생의 발인 시각 즈음에 그의 글을 그리워하며 몇글자 남긴다.

<레테를 위한 비망록>한겨레신문사      
본서는 정운영교수의 신문과 잡지에 실린 칼럼들을 모아서 출간한 것이다. 정교수의 다른 칼럼집과 구분되는 것은 '사법연수', '캠퍼스저널', '우리세대' 이상 3잡지와 대담한 인터뷰 내용 전문이 덤으로 '고백1,2,3이라는 제목으로 실려있다. 정교수의 과거행적과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KBS에서 행한 대학생특장 원고 전문도 읽어볼만 하다. 마지막으로 97년 한겨레21에 기고한 대학새내기를 위한 추천도서 10권이 주목을 끈다. Yes24에서 도서검색을 해보니 이 놈의 책 열권은 거의 뜨지 않는다. 책을 추천해도 꼭 구입하기 힘든 책만 추천하는 정교수의 심보가 얄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