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19일 일요일

정운영, 레테를 위한 비망록, 한겨레신문사


2005년 9월 토요일 아침 프레시안을 읽다가 부고를 보았다. 24일 오전 향년 62세 신부전증으로 사망, 삼성서울병원 27일 발인...  그의 부고기사를 읽고 못내 아쉬웠다. 한번은 꼭 만나봤어야 할 사람이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정운영의 글을 처음 접한 때가 고교시절이었다. 한겨레신문이 창간되고 ‘전망대’라는 고정칼럼을 통해 그의 글을 간간히 읽으면서 ‘글 잘 쓰네...’하는 생각을 했다.(당시 고등학생이었던 89년도에 시사저널이 창간되었는데, 나는 2년 동안 시사저널을 정기구독하면서 한겨레신문보다는 시사저널의 팬이되어 당시 시사저널 고정 칼럼니스트였던 박권상,한승주,김훈,한완상,최일남 칼럼에 몰입해 있었다. 그리고 대구에서는 한겨레신문 구하기도 힘들었다) 대학 입학해서 서울 올라와서는 한겨레신문 애독자가 되었다. 설교도 일년 52주 중에 3-4번은 홈런치는데.. 칼럼리스트도 일년에 서너번은 명칼럼을 쓸 수 있다. 그런데 정운영의 칼럼은 볼 때마다 이건 홈런.. 최소 2루타였다. 91년 한해동안 정운영의 칼럼에 푹 빠져지냈다. 학교 도서관에 비치된 한겨레신문 정운영칼럼(전망대)부터 보는 버릇이 생겼다. 전공이 정치외교라 정치경제를 전공한 그의 글이 나한테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하나의 현상을 분석하고 설명하는데 동원되는 그의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에 찬탄을 보내게 되었다. 그의 논리는 굉장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 치열한 논리를 따뜻한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감싸 놓은 글솜씨에 입이 딱벌어졌다. 그 때 생긴 소원이 ‘나는 언제쯤 정운영처럼 이정도 수준의 글을 쓸 수 있을까...’ 너무 탁월한 실력 앞에서는 본받고자 하기 보다는, 아예 기가 질려 닮고자하는 엄두를 못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운영의 칼럼을 꾸준히 읽어나가길 십여년... 나도 모르게 서서히 글쓰기 내공이 쌓이기 시작했다. 좋은 설교를 하려면 좋은 설교를 많이 들어봐야 된다. 마찬가지로 좋은 글을 쓰려고 하면 좋은 글을 많이 읽어봐야 한다. 정운영의 글은 나로하여금 기가 질리게 만들었지만 내 글쓰는 내공을 쌓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정운영선생은 거의 격년마다 자기 칼럼을 손봐서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했다. 책이 나오는 족족 사서 읽기 시작했다. 물론 신문에서 이미 읽은 글이 대부분이지만 그의 글은 책으로 소장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기에 기꺼이 구입했다. 이미 절판된 책은 헌책방을 뒤져서라도 손에 넣었다. 그의 지적 편력을 살펴보면 정운영의 사고방식과 사상의 스펙트럼을 유추해볼 수 있다. 정운영선생은 조흥은행 창업주의 동생을 아버지로 두고 있다. 대구에서 경북중학교를 나온 정운영은 아버지를 여인 후 어머니 고향인 충남 온양에서 고교를 마친다. 고교시절에는 범생이기 보다는 조금 막나가는 온양에서 유명한 학생이었다. 재수 끝에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하고 써클을 조직하고는 이론가로서 자질을 닦기 시작한다. 졸업 후 벨기에 루뱅대학에서 마르크스의 이윤률 저하 경향의 법칙이 최근 미국 100년의 역사에서 타당성을 가지는지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하고 돌아온 정치경제학의 대가 두사람 김수행(현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와 함께 한신대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의 부흥을 꿈꾸다가 학내개혁을 주창하가 쫓겨나게 된다. 이후 학자의 길은 잠시 접고 한겨레창간과 함께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 때가 그의 글쓰기 전성기가 아닌가 싶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 명지대에서 가르치면서 몇년전엔 MBC 100분 토론 사회자로 활동했다. 나는 그의 목소리에도 반했다. 중저음의 차분한 목소리는 그의 글과 똑같은 분위기였다. 배고픈 한겨레신문사를 나와 재벌언론 중앙일보사로 옮겨간 것에 대해 왈가불가 말이 많다. 그의 변질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의 노선이 조금 바뀐거 같아 서운하기는 하지만, 철두철미한 글쓰는 태도와 행간에 배어있는 그의 인격은 여전했다. 나또한 그의 칼럼내용 모두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논리전개방식과 어투, 사람에 대한 애정,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그의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 현학적이긴 한데 독자의 무식함을 자존심상하게 나무라지 않는 배려, 나와 코드가 맞는 좌파적인 사고방식, 사태를 특이한 시선으로 분석하는 삐딱함.. 이 모든 것을 나는 사랑한다. 어설프지만 나의 글쓰기를 훈련하는데에는 정운영선생에게 진 빚이 크다. 기회가 되면 꼭한번 찾아가서라도 만나보고 싶었는데... 지병을 앓고 있는 줄 알았으면 E-mail보낸 후 한번 찾아 뵐 것을... 아쉽다. 故人의 죽음을 애도하며.... 2005년 9월 27일 鄭雲暎선생의 발인 시각 즈음에 그의 글을 그리워하며 몇글자 남긴다.

<레테를 위한 비망록>한겨레신문사      
본서는 정운영교수의 신문과 잡지에 실린 칼럼들을 모아서 출간한 것이다. 정교수의 다른 칼럼집과 구분되는 것은 '사법연수', '캠퍼스저널', '우리세대' 이상 3잡지와 대담한 인터뷰 내용 전문이 덤으로 '고백1,2,3이라는 제목으로 실려있다. 정교수의 과거행적과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KBS에서 행한 대학생특장 원고 전문도 읽어볼만 하다. 마지막으로 97년 한겨레21에 기고한 대학새내기를 위한 추천도서 10권이 주목을 끈다. Yes24에서 도서검색을 해보니 이 놈의 책 열권은 거의 뜨지 않는다. 책을 추천해도 꼭 구입하기 힘든 책만 추천하는 정교수의 심보가 얄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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