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0월 한국 최초의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이 창간되었다. 당시 고2였던 나는 용돈에 상당한 부담이 되었지만 정기구독을 신청했다. 그나마 조금 일찍 세상에 눈 뜨기 시작한건 80년대 중반 암울한 시대상황 때문이기도 했고, 집근처에 있는 영남대와 형들의 영향도 컸다. 그 때는 하루가 멀다하고 데모였다. 최류탄 가스가 시내를 다 뒤덮어 켁켁거리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알게된 시사저널이 망가졌다. 몇 년전 시사저널이 삼성에 백기투항한 사건이 있었다. 창간정신을 주장하며 반발하던 시사저널 기자들이 쫓겨나서 만든 주간지가 ‘시사人(인)’이다. 아무튼 고교졸업하고 대학다닐 때 한겨레신문에서도 주간지를 창간했다. 역시나 당시 시사저널의 성공으로 각 언론사마다 시사주간지를 경쟁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한겨레21’은 단연 돋보였다. 한겨레21을 대학 때 정기구독하면서 ‘정문태’라는 기자의 기사를 자주 접하게 되었다. 한겨례21 정식 기자도 아닌거 같은데... 프리랜서라고 하기에는 아시아 상황에 대해서 너무 전문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라 눈여겨보고 있었다. 한번은 2001년도인가 그의 글을 읽다가 발견한 이메일 주소로 감사와 격려의 편지를 보낸 적도 있다.(나는 이런 짓 잘하는 인간이 아니다...ㅎㅎ내가 그의 글에 얼마나 감동했으면 그랬겠는가)
정문태기자
정문태기자의 글에는 아시아인을 향한 연대의식과 연민이 구구절절히 배어있다. 한겨레21에 기고했던 내용을 토대로 취재 뒷담화까지 포함해서 2004년 단행본으로 출간한 책이 ‘전쟁취재 16년의 기록’이다. 글을 읽는 내내 놀랐다. 먼저는 아시아 역사에 대한 나의 무식함에 놀랐고, 한국만 겪은 줄 알았던 격동을 아시아의 거의 모든 나라가 한국과 비슷한 역사적 상흔을 가졌다는 사실에 놀랐다. 특히 수하르토의 발리 학살은 우리 광주사태와 너무나 닮아있었다. 나의 역사적 지식은 유럽과 미국, 아시아에서는 한중일에 편중되어 있었다. “韓中日 역사만 알면 아시아 역사는 다 안거다.”라는 내 생각은 철저한 오만이자 편견이었다. 인도, 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스리랑카/타밀, 파키스탄, 아프카니스탄, 인도네시아/티모르/아체... 중앙아시아와 아랍권 국가들... 이들에 대한 무식과 무관심은 결국 아시아에서 한중일 3국을 제외한 나의 무시의 소치임이 판명된 것이다.
그렇다. 무식은 무시다.
정문태의 글을 읽으며 나뿐만 아니라 한국의 아시아에 대한 무관심과 무시를 참회한다. 정문태기자는 위험한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주워들은 정보를 조합해 기사를 만들어내는 기자가 아니다. 그는 언제나 현장에 있다. 그리고 현장에서 경험하고 직접들은 내용이 아니면 쓰지 않는다. 전투현장에서 격은 수많은 사건들을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것을 기자로서 ‘죄악시’하는 사람이다. 그는 기사로만 승부한다. 우리 시대에 이런 전선기자(정문태는 ‘從軍(종군)’기자라는 용어를 극도로 싫어한다. 군대의 보호를 받으며, 군대를 따라다니며, 군대가 주는 정보를 의지하여, 군대의 비리와 권력의 잘못을 합리화시켜주는 군에 종속된 從軍기자이기를 거부한다)를 한 명이라도 갖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르겠다.
베트남 전쟁의 의미와 양상, 그리고 미국의 세계지배 전략과 한국의 입장에 대해 미국 언론이 전해주는 내용만 받아쓰기하여 보도하던 1970년대 한국언론/정치상황에서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는 사람들에게 충격과 더불어 베트남전과 미국, 세계를 보는 눈을 띄워주는 의식있는 민주시민의 필독서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문태의 ‘전쟁취재 16년의 기록’은 바로 우리 옆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관해 AP,로이터,CNN이 전해주는 내용만을 ‘받아쓰기’해서 전해주는 현재 한국언론 상황에서 리영희교수의 책만큼이나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 판단된다. 한겨레21에서는 싣지 못한 자기 내면의 이야기도 취재 내용에 곁들여 같이 쓰고 있는데, 읽는 내내 ‘나는 그래도 상당히 객관적인 세계정세를 분석하고 있고, 주류언론에서 사태를 왜곡보도하는 내용도 어느정도 잡아낼 수 있다’는 내 생각이 교만한 생각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프카니스탄, 인도-카슈미르, 팔레스타인, 코소보, 예멘, 인도네시아-아체, 캄보디아, 라오스, 버마(미얀마).... 독재정권, 민족주의의 탈을 덮어쓴 체 인종청소를 정당화하는 군벌들... 이를 이용해먹는 유럽과 미국, 특히 미국의 지저분함은 상상이상이다. 이런 내용을 블로그에서 다 언급할 수는 없고, 궁긍한 사람은 책을 사서 읽어보기 바란다. 최근 출간된 ‘역사는 현장이다’ 이 책도 읽고 싶은데 한국갔다 오는 사람한테 부탁해볼까 싶다.
정문태기자의 아프카니스탄 기사 내용 중 몇부분만 추려서 옮겨본다.
탈리반 최고지도자 물라 오마르는 1994년 출발 때부터 출처를 모를 막대한 US 달러를 뿌려댔다. 무급 구세군이라 주장했던 탈리반 전사들은 갓 은행에서 인출한 듯 빳빳한 US 달러를 자랑스레 흔들고 다녔다. 이건 탈리반의 태생적 한계이기도 했다. 탈리반은 미국이 창조해낸 부패한 ‘작품’일 뿐이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불법 ‘Iran 혼란조성용 자금’ 가운데 일부를 파키스탄 정보국(ISI)을 거쳐 물라 오마르에게 지급함으로써 탈리반은 태어났다. 1990년대 들어 CIA는 ‘러시아 남하정책 봉쇄’라는 미국의 전통적인 對중앙아시아 전략과 함께 가스/원유를 낀 경제적 잇속을 계산하며 아프카니스탄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CIA는 對소비에트 항쟁 주역들 사이에 벌어진 정쟁상태를 장악할 수 있는 새로운 대체세력, 다시 말해 미국에 이익을 안겨줄 대안을 염두에 두고 탈리반을 설계했다. 그리고 미국의 이슬람 맹방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뒷돈을 대고, 파키스탄이 병참기지 노릇을 하면서 탈리반을 키워냈다.
베트남 전쟁의 의미와 양상, 그리고 미국의 세계지배 전략과 한국의 입장에 대해 미국 언론이 전해주는 내용만 받아쓰기하여 보도하던 1970년대 한국언론/정치상황에서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는 사람들에게 충격과 더불어 베트남전과 미국, 세계를 보는 눈을 띄워주는 의식있는 민주시민의 필독서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문태의 ‘전쟁취재 16년의 기록’은 바로 우리 옆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관해 AP,로이터,CNN이 전해주는 내용만을 ‘받아쓰기’해서 전해주는 현재 한국언론 상황에서 리영희교수의 책만큼이나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 판단된다. 한겨레21에서는 싣지 못한 자기 내면의 이야기도 취재 내용에 곁들여 같이 쓰고 있는데, 읽는 내내 ‘나는 그래도 상당히 객관적인 세계정세를 분석하고 있고, 주류언론에서 사태를 왜곡보도하는 내용도 어느정도 잡아낼 수 있다’는 내 생각이 교만한 생각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프카니스탄, 인도-카슈미르, 팔레스타인, 코소보, 예멘, 인도네시아-아체, 캄보디아, 라오스, 버마(미얀마).... 독재정권, 민족주의의 탈을 덮어쓴 체 인종청소를 정당화하는 군벌들... 이를 이용해먹는 유럽과 미국, 특히 미국의 지저분함은 상상이상이다. 이런 내용을 블로그에서 다 언급할 수는 없고, 궁긍한 사람은 책을 사서 읽어보기 바란다. 최근 출간된 ‘역사는 현장이다’ 이 책도 읽고 싶은데 한국갔다 오는 사람한테 부탁해볼까 싶다.
정문태기자의 아프카니스탄 기사 내용 중 몇부분만 추려서 옮겨본다.
탈리반 최고지도자 물라 오마르는 1994년 출발 때부터 출처를 모를 막대한 US 달러를 뿌려댔다. 무급 구세군이라 주장했던 탈리반 전사들은 갓 은행에서 인출한 듯 빳빳한 US 달러를 자랑스레 흔들고 다녔다. 이건 탈리반의 태생적 한계이기도 했다. 탈리반은 미국이 창조해낸 부패한 ‘작품’일 뿐이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불법 ‘Iran 혼란조성용 자금’ 가운데 일부를 파키스탄 정보국(ISI)을 거쳐 물라 오마르에게 지급함으로써 탈리반은 태어났다. 1990년대 들어 CIA는 ‘러시아 남하정책 봉쇄’라는 미국의 전통적인 對중앙아시아 전략과 함께 가스/원유를 낀 경제적 잇속을 계산하며 아프카니스탄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CIA는 對소비에트 항쟁 주역들 사이에 벌어진 정쟁상태를 장악할 수 있는 새로운 대체세력, 다시 말해 미국에 이익을 안겨줄 대안을 염두에 두고 탈리반을 설계했다. 그리고 미국의 이슬람 맹방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뒷돈을 대고, 파키스탄이 병참기지 노릇을 하면서 탈리반을 키워냈다.
그런데 2010년 현재 미국은 그들이 실컷 키워낸 탈리반에 대해 사과 한마디 없이 처단해야할 테러분자들이라고 열을 올리며 탈리반을 대상으로 전쟁을 펼치고 있다.
"냉전시절, 미국 대신 아프카니스탄이 소비에트(소련)와 싸웠다. 미국 대신 아프카니스탄이 전쟁터가 됐고, 미국 대신 아프카니스탄 사람들이 죽었다. 그러나 소비에트군이 철수하자, 미국은 사회복구 약속도 경제지원 약속도 모두 팽개치고 발을 뺐다. 해서 내전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에 있다." - 불하누딘 랍바니(Burhanuddin Rabbini) 대통령, 1997년 인터뷰에서 -
1990년대 아프카니스탄 전쟁은 적도 동지도 없는 국제사회를 증명하는 혼잡한 대리전이었다. 미국은 전통적인 러시아 남하정책 봉쇄와 원유를 낀 중앙아시아로부터 경제적 이권을 노려 개입했고, 파키스탄은 혈통이 같은 파슈툰족(탈리반)으로 아프카니스탄을 장앙해 중앙아시아 진출 교두보를 삼고자 개입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 정책을 지원하는 대가로 한계에 이른 왕실 유지와 중앙아시아 원유사업 기득권을 얻고자 각각 탈리반을 지원했다. 이란은 수니파 근본주의 탈리반 팽창을 막고자 같은 시아파 하자리족 헤즈비 와흐닷을, 인도는 탈리반을 쥐락펴락하는 파키스탄 영향력의 확대를 막고자 마수드의 자미아티 이슬라미를, 그리고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탈리반식 근본주의 유입을 막고자 핏줄이 같은 도스텀과 마수드를 각각 지원해왔다. 러시아는 그런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을 돌봐주며 동시에 중앙아시아로부터 미국 영향력을 저기하기 우해 마수드를 도왔고, 프랑스는 전통적인 친프랑스 성향을 보여왔던 마수드를 지원하는 대신 보석을 비롯한 천연자원을 둘러싼 경제적 이권을 노렸다. 터키는 중앙아시아 일대를 포함하는 대터키(Great Turkey) 개념 실현을 염두에 두고 핏줄이 같은 우즈베크계 도스텀 뒤를 밀었도 중국은 신장-위구르지역 이슬람 분리독립 단체들과 탈리반이 접속하는 걸 차단하기 위해 마수드를 밀었다. 아프카니스탄 전쟁에 개입한 이들 나라는 군자금과 군수품은 말할 것도 없고 군사고문관까지 각 진영에 파견했다. 이래도 아프카니스탄 전쟁을 ‘내전’이라 부를 수 있는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