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19일 일요일

이태준, 無序錄, (범우사:1993년 刊)

나는 70년대 초반에 태어나 80년대 군사정권시절에 유년,청소년시절을 보냈고, 90년대 초반에 대학시절을 보낸 사람이다. 고교시절 한국단편 소설은 거의 다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태준의 작품은 접할 수도 없었다. 군복무중인 1993년 범우사에서 이태준의 수필 ‘무서록’이 출간되었다. 서점에 들렸다가 책제목이 눈이 띄어서 집어 들었다. ‘無序錄’ ‘서문이 없는 글’이라.... 그냥 의도를 가지고 쓴 글이 아니라 생각나는데로 단편적으로 써내려간 글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저자를 보니 상허 이태준... 월북작가라는 프로필이 눈이 띄었다. ‘음.. 그래서 YS정권 들어선 지금에서야 출판금지가 해제되었구나...’ 2000원밖에 하지 않는 문고판이라 들고 다니면서 읽었다. 그런데... 별생각 없이 읽어내려가다가 빠져들어갔다. ‘어라~ 이 글이 진정 일제시절 1920-30년대에 쓰여진 글이란 말이가?’ 믿겨지지 않았다. 깔끔한 문장.... 정선된 문체, 소박하지만 고급스런 어투...

마치 ABBA의 음악을 듣는 듯 했다. ABBA의 음악은 1970년대에 만들어진 음악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만큼 지금 들어도 그 편곡이나 악기사용 등이 얼마나 세련돼있는지.... 2004년 요즘 나오는 곡들보다 훨씬 더 세련되있다는 느낌이 든다.

1941년에 출간된 무서록... 지금 읽어도 현대어 감각에 비추어 전혀 손색이 없는 탁월한 수필집이다. 이태준 대단한 문필가이다. 이때까지 내가 읽어본 최고의 수필을 꼽아보라면 나는 주저없이 이태준의 ‘무서록’을 추천한다.

목회자는 설교자이기 때문에 다양한 표현법을 체득해야 한다. 그래서 잘 쓰여진 수필이나 시를 많이 읽어야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내 나름대로 고급스런 문장들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는데... 내 설교 말투는 아직도 너무나 투박하고.. 쌍스럽고... 과격하다. 우리 집사람이 내 설교투를 매번 지적한다. 그래도 나는 내 말투를 바꿀 의도가 별로 없다. “나는 내방식대로 설교할꺼야”라고 아내한테 댓구할 때마다, 아내는 ‘저 똥고집’이라며 놀린다. 그리곤 ‘당신처럼 고급문장의 책을 많이보면서도 언어순화가 안되는 사람은 없을거야...’라며 포기를 한다. 여보 마누라.. 글과 말투는 그 사람의 성격과 기질의 반영이지... 부드러운 책 많이 본다고 사람의 기질과 성격이 바뀌는 건 아니올시다...! 그래도 나도 부드러운 표현을 잘 하는 설교자이고 싶다. 얼마나 더 부드러운 글고 고급스런 문체를 접해야 내 말투가 바뀔까.... 예수님 재림하시는게 더 빠르지 않을까.. 허허~



* 2004년 이태준 고택 수연산방에 갔다가 한 컷

내 블로그를 방문해준 분들을 배려하는 심정에서 '무서록'에 실린 이태준의 수필 중 내가 좋아하는 글 한편만을 맛배기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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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品愛

어제 京城驛(경성역)에서 新村(신촌)오는 汽動車(기동차)에서다. 책보를 메기도 하고, 끼기도 한 소녀들이 참세떼가 되어 재깔거리는 틈에서 한 아이는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흑흑 느껴 울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우는 동무에게 잠깐씩 눈은 던지면서도 달래려 하지 않고, 무슨 시험이 언제니, 아니니, 내기를 하자느니 하고 저희끼리만 재깔인다. 우는 아이는 기위 입은 적삼 등어리가 그저 들먹거린다. 왜 우느냐고 묻고 싶은데 마침 그애들 뒤에 앉았던 큰 여학생 하나가 나보다 더 궁금했던지 먼저 물었다. 재재거리던 참새떼는 딱 그치더니 하나가 대답하기를

“걔 재봉한 걸 잃어버렸어요”한다.

“학교에 바칠 걸 잃었니?”

“아니야요. 바쳐서 잘했다구 선생님이 칭찬해주신 걸 잃어버렸어요. 그래 울어요.”

큰 여학생은 이내 우는 아이의 등을 흔들며 달랜다.

“얘 울문 뭘 허니? 운다구 찾아지니? 울어두 안 될걸 우는 건 바보야.”

이 달래는 소리는 기동차 달아나는 소리에도 퍽 맑게 들이어, 나는 그 맑은 소리의 주인공을 다시 한번 돌려 보았다. 중학생은 아니게 큰 처녀다. 분이 피어 그런지 흰 이마와 서늘한 눈은 기동차의 유리창들 보다도 신선한 처녀다. 나는 이내 굴속으로 들어온 기동차의 천장을 쳐다보면서 그가 우는 소녀에게 한 말을 생각해보았다.

“애 울문 뭘 허니? 운다구 찾아지니? 울어두 안 될걸 우는 건 바보야.”

이치는 맞는 말이다. 울기만 하는 것으로 찾아질 리 없고, 또 울어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우는 것은 확실히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울음에 있어 곧잘 어리석어진다. 더욱 이 말이 여자로도 눈물에 제일 빠른 처녀로 한 말임에 생각할 재미도 있다. 그 희망에 찬 처녀를 저주해서가 아니라 그도 이제부터 교복을 벗고 한번 人間制服(인간제복)으로 갈아입고 나서는 날, 감정 때문에, 혹은 이해 상관으로 ‘울어도 안 될 것’을 울어야할 일이 없다 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신촌역을 내려서도 이 ‘울문 뭘 하니? 울어두 안 될 걸 우는 건 바보야’ 소리를 생각하며 걸었다. 그러나 그 말이나 이 말의 주인공은 점점 내 마음속에서 멀어가는 대신 점점 가까이 떠오르는 것은 그 재봉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소녀이다. 그는 오늘도 울고 있을 것 같고 또 언제든지 그 잃어버린 조그마한 자기 작품이 생각날 때마다 서러울 것이다. 등어리를 조각조각 기워 입은 것을 보아 색헝겊 한 오리 쉽게 얻을 수 있는 아이는 아니었다. 어머니께 조르고 동무에게 얻고 해서 무엇인지 모르나 구석을 찾아 앉아 동생 보지 않는다고 꾸지람을 들어가며 정성껏, 솜씨껏, 마르고, 호고, 감치고 했을 것이다. 그것이 여러 동무의 것을 제쳐놓고 선생님의 칭찬을 차지하게 될 때, 소녀는 세상일에 그처럼 가슴이 뛰어본 적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이제 하학(하교-서목사 註)만 하면 어서 가지고 집으로 가서 부모님께도, 좋은 끗수 받은 것을 자랑하며 보여드리려던 것이 그만 없어지고 말았다.

소녀에게 있어선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니요 작은 슬픔이 아닐 것이다. 나도 작품을 더러 잃어보았다. 稻香(도향-여기서 도향은 나도향을 말한다-서목사 註)의 죽은 이듬핸가 曙海(서해-함북 성진 출신의 ‘탈출기’로 유명한 소설가-서목사 註)형이 <현대평론>에 도향 추도호를 낸다고 추도문을 쓰라 하였다. 원고청이 별로 없던 때라 감격하여 여름 단열밤을 새어 썼다. 고치고 고치고 열 번도 더 고쳐 현대평론사로 보냈더니 서해형이 받기는 받았는데 잃어버렸으니 다시 쓰라는 것이다. 같은 글을 다시 쓸 정열이 나지 않았다. 마지못해 다시 쓰기는 썼지만 아무래도 처음에 썼던 것만 못한 것 같아 찜찜한 것을 참고 보냈다.

신문, 잡지에 났던 것도 미처 떼어두지 않아서, 또 떼어뒀던 것도 어찌어찌해 없어진다. 누가 와 어느 글을 재미있게 읽었노라 감상을 말하면, 그가 돌아간 뒤에 나도 그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어 찾아본다. 찾아보다 찾아내지 못한 것이 이미 서너 가지 된다. 다시 그 신문, 잡지를 찾아가 오려 오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꽤 섭섭하게 그 날 밤을 자곤 하였다. 이 ‘섭섭’을 꽤 심각하게 당한 것은 장편 <聖母(성모)>다. 그 소설의 주인공 순모가 아이를 낳아서부터, 어머니로서의 애쓰는 것은 나도 상당히 애를 쓰며 썼다. 책으로는 못 나오나 스크랩채로라도 내 자리 옆에 두고 싶은 애정이 새삼스럽게 끓었다.

그러나 울지는 않았다. 위에 기동차의 소녀처럼 울지는 않았다. 왜 울지 않았는가? 아니 왜 울지 못하였는가? 그 작품들에게 울 만치 애착, 혹은 충실하지 못한 때문이라 할 수밖에 없다. 잃어버리면 울지 않고는, 몸부림을 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작품을 써야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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