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19일 일요일

피에르 신부, '단순한 기쁨', (2001:마음산책)

1997년 겨울 또 한명의 따뜻한 분을 책에서 만났다. 프랑스에서 빈민운동을 펼치고 있는 Abbe Pierre신부님이 그이다. 1912년 리옹의 상류층가정에서 태어나 열아홉살에 모든 유산을 포기하고 카푸친 수도회(학문보다는 경건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민중적 수도회) 들어가 수도사의 길을 걷게 된다. 7년간의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한 영혼의 풍성함을 누릴 때... 2차대전이 발발한다. 유럽전역에서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이 시행되자 그 참상을 목격하고선, 바로 항독 레지스탕스에 가담하게 된다. 당시 많은 사제들이 엄난한 세상을 떠나 별천지같은 수도원에서 하나님과의 단독면담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세상을 사랑한 하나님’(요3:16)을 따라 현실세계문제에 참여하고자 레지스탕스로 국경을 넘나들며 유태인을 위해 도피처와 위조신분증을 만들어주며 저항운동의 중심에서 활약하게 된다.(그러나 신부님은 자신의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정적 활동의 에너지 공급원은 바로 7년간의 하나님과 단독면담에서 축척한 영성이었다고 고백한다) 전쟁이 끝난 후, 한 때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새로운 복지정책 입안을 주도했다. 그러다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모아 Emmaus공동체를 설립해 그들과 함께 살면서 H.L.M.(빈민들을 위해 건설한 주택단지)건설에 힘을 쏟았다. 끔찍스럽게도 추웠던 1954년 겨울, 버려진 폐차 속에서 얼어죽은 아이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생방송 중인 라디오방송국으로 뛰어들어가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한 도움의 손길을 호소하여 엄청난 감동과 파문을 일으켰다.

이 일화를 소재로 한 그의 삶이 ‘겨울54’(이 영화 비디오 테입 우리 집에 있다)라는 영화와 샹송으로도 만들어져 지금도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프랑스 정부에서 수여하는 레지옹 도뇌르 2급, 3급 훈장(인권 부문)을 수상한 그는 카톨릭 교계뿐 아니라 국내외 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아베 삐에르를 지칭하여 ‘금세기 최고의 휴머니스트’라 부른다.  
 
 
피에르 신부, '단순한 기쁨', (2001:마음산책)       
삐에르 신부님의 자전적인 기록인 ‘단순한 기쁨’에 소개된 한 얘기를 내 방식대로 옮겨보고자 한다.
전쟁이 끝나고 선거유세가 한창일 무렵이었다. 당시 국회의원 후보로 입후보한 삐에르 신부님은 거리에서 대중연설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편 후보진영에서 동원된 사람들이 신부님의 연설을 방해하는 소란을 피우며 연단을 향해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온갖 흑색선전과 음해가 난무하는 가운데 신부님의 연설은 더 이상 계속 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다. 그 때 저 뒤쪽에서 눈빛이 살아있는 초라한 노인네 한명이 “제가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방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권위가 서려있는 노인네의 표정과 단호한 말투에 사람들은 잠시 입을 다문 것이다. 노인네는 연단 위로 올라섰다. 마이크를 잡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는 삐에르 신부님에게 표를 던지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분과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방금 들었던 욕설만큼은 참을 수가 없군요. 신부님께서는 저를 알지 못하십니다. 저는 샘 욥이라는 유대인 랍비입니다. 독일군 점령 당시 어려움에 처한 제 친구들을 신부님께 맡겼던 사람입니다. 어느 날 밤 신부님 친구 분들의 안내를 받아 산으로 피신하기로 되어 있던 사람들 중 친구가 헌 슬리퍼를 신고 있는 것을 보고선 신부님께서는 당신의 구두를 벗어주시고, 눈길 위를 맨발로 걸어서 돌아가셨습니다. 내가 아는 신부님은 그런 분입니다. 당신들이 정치적 견해를 달리해서 신부님을 지지하지 않더라고 인격적인 모독을 하거나 음해를 하거나 욕설을 퍼붓지는 마십시요. 신부님은 당신들한테 그런 욕먹을 만큼 지저분한 삶을 산 분이 아닙니다.” 랍비의 발언이 있은 후 유세장은 쥐죽은 듯이 조용해 졌다. 사람들은 전율할 만큼 감동했고, 이 추억을 떠올린 랍비와 삐에르 신부님은 감격해서 서로 부등켜안았다. 난잡한 정치판에서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신부님을 그 때를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정치는 사람을 분리시키지만 연대행동은 사람을 결합시키는 법이다.”
아베 삐에르 신부님의 자전적인 회고담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목회는 이런건데... 아.. 내 안에 사랑이 없구나... ” 삐에르신부님의 삶에 감격해서 울고... 메마른 내 자신과 척박한 목회현장 때문에 또 울었다. 이 후 나에겐 간절한 소원 하나가 생겼다. 열악한 상황에서 처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더불어 목회를 하더라도 따뜻한 마음을 서로 교감하며 ‘마음’을 나누는 목회를 하고 싶다는 소원 말이다. 목회 사역... 일에 치이다보면 언제라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영혼들간의 접촉이 목회임을 자꾸 망각하게 된다. 목회는 일이 아니라 사람과 하나님의 만남이며, 인격과 인격.. 사람간의 감동있는 인격적 접촉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랑은 나눔이다. 내가 가진 에너지를 나눠주는 것이며, 내가 가진 돈과 물건을 나눠주는 것이며, 내가 가진 지식과 knowHow를 나눠주는 것이다. 그리고 내 생명과 복음을 나눠주는 것이다.
본서를 읽으면서 또하나 든 생각...
아베 삐에르는 humanist이기 이전에 Evangelist다. 나는 ‘카톨릭에 구원이 없다’라고 결론 내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카톨릭 내에도 복음주의자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개신교 내에 얼마나 많은 이단들이 존재하는가! 물론 분명히 카톨릭에는 성경에도 없는 비진리를 진리로 가르치는 잘못된 부분이 틀림없이 있다. 하지만 카톨릭 가운데도 복음을 믿고 공식적으로 비진리에 반박하지 않을 뿐이지 속으로 교황청에서 주장하는 비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분들이 많다.
‘단순한 기쁨’은 아베 신부님 자신의 자전적 얘기를 서술한 책이다. 그런데 책 내용의 대부분은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나누고 있다. 자전적 얘기보다 복음을 설명한 내용이 더 많다. 카톨릭 사제인데도 복음주의자다. 놀랍다. 카톨릭에 대한 나의 편견을 다시 한번 재고케 하는 책이었다.
 
이사진은 앙리 까르띠에 쁘레송(Henri Cartier-Bresson)이 찍은 아베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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