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당신들의 대한민국02, 한겨레출판
박노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이다. 그곳 대학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서울 소재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한국을 몸으로 익혔다. 한국인으로 귀화해서 박노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의 글에는 한국에 대한 애정이 흠뻑 배어있다. 그러나 뼈아픈 지적이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었기 때문에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점들을 박노자는 기가 막히게 짚어 낸다. 외국인의 시각에 보여진 한국 사회,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당신들의’ 대한민국... 이미 한겨레신문과 한겨레21에 칼럼으로 연재된 내용이지만 충분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지 않은 외국인이 한국어를 이렇게 능통하게 사용하는 것 자체가 놀랍고 우리 문화에 대한 이 정도의 깊이있는 이해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란다. 무심결에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우리 사고방식을 재점검해보는 자극을 받았다.
책 읽으면서 자극 받은 내용을 몇 개 소개해 본다.
한국 드라마들이 중국이나 베트남 방송에서 상영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 내용에 정치/사상적으로 불온한 요소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국의 대중을 신자유주의적으로 수탈하고 있는 옛 공산권 국가 지도층의 입장에서는 한국 드라마들의 분위기가가 대중들의 신자유주의적 순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대규모의 조직적인 반자본주의적 운동들이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운동들에 대한 공포심이 큰 저들 나라의 지배계급은 1980년대 후반부터 대규모의 운동으로 표출된 민중의 볼온한 심성을 중산계층, 소비 지향의 연예 문화로 적절히 잘 길들이고 약화시켜온 선배 한국을 배우고 있는 모양이다.
한국의 중도 자유주의자들이 친미주의의 환상에서 벗어나는 계기는 무엇이었는가? 나는 그것이 베트남 전쟁과 한국군 베트남 파병의 문제였다고 본다. 그 때야말고 그 전까지 대충 친미 반공의 입장에 섰던 장준하나 함석헌 등의 기독교적 자유주의의 대표적인 이념가들은 미국 침략과 독재자 박정희의 침략 앞잡이 노릇을 비판하게 되었으며, ‘미국과 제3세계’ 관계의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사유하게 됐다.
그렇다면 고종이나 조선의 기독교적 민족주의자들이 과연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던가? 천만의 말씀이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어 한국을 보호국화했을 때,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에 대한 고종의 ‘눈물의 호소’가 일소에 부쳐졌고, 친일적이었던 미국 선교사들에게 절망한 이동휘와 같은 일각의 민족주의적 기독교인들은 아예 공산주의로 改宗하기도 했다. 현재의 ‘用美論者’들은 왜 쓰라린 역사적 교훈을 배우지 못하는가?
1991년 10월 26일 외국인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했던 중소기업인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노태우 정권은 소위 ‘산업기술연수 제도’를 도입했다. 일본의 사업기술연수제도를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노임 미지급으로 얻는 착취 소득이 제품 매상으로 얻는 판매 소득보다 높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아일보와 경성방직을 경영했던 1920년대의 김성수, 김연수 형제는 한편으로는 신문을 통해 물산장려운동을 벌여 ‘질이 떨어지더라도 민족의 미래를 위해 조선 상품을 사자’고 하여 조선인의 애국심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상품을 ‘판촉’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총독부에다 신청을 하여 경성방직 불입 자본의 1/4에 달하는 막대한 일제의 보조금을 받고 일제의 금융지배의 상징인 식산은행으로부터 많은 대부를 얻어 내는 등 일제 권력과 ‘협력’하면서 그 사업을 꾸준히 확장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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