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 저널리스트, 국회의원, 정부 대변인, 역사학자, 소설가... 유럽 근현대사를 두루 섭렵한 그가 현실 정치를 떠나 한 인물에 대한 역사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바로 나폴레옹이다. 유럽 좌파 지식인이라면 나폴레옹을 ‘프랑스 대혁명의 난세를 이용해서 권력을 잡은 시대의 전쟁광’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막스 갈로는 그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좌파이면서도 나폴레옹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막스 갈로의 글에는 나폴레옹에 대한 애정이 배어있다.
나는 역사 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차라리 당시 서신이나 보고서등을 근거로한 역사책을 읽고 말지, 소설은 별로다. 너무 상상력을 동원한 나머지 역사에 없는 얘기를 실제로 있었던 것처럼 떠드는 역사가인척 하는 소설가들이 탐탁지 않아서 그렇다.
그러나 막스 갈로는 뭔가 좀 다른 소설가이다. 나폴레옹 5권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막스 갈로... 편집증 환자처럼 보인다. 나폴레옹 소설을 쓰기위해 유럽에 산재해 있는 나폴레옹 관련 자료는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나도 나폴레옹 관련 역사서를 몇권 읽은 터라, 막스 갈로가 얼마나 사실과 자료에 근거해 소설을 썼는지 극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본 소설은 한 인물에 대한 재밌있게 각색한 소설이라기 보다는 ‘이야기로 풀어쓴 역사 전기물’쯤으로 봐야 할 듯 싶다.
Max Gallo 著, '나폴레옹 1권-출발의 노래', 문학동네
2003년 가을 파리를 여행하다가 소로본느를 지나 시떼섬쪽으로 옮겨가는 길에 세느강변에서 좌판 헌책방을 만났다. 막스 갈로의 책을 발견하고는 울매나 반갑든지 한장 찍어봤다.
1권 책표지로 쓰였던 나폴레옹 초상화를 루부르박물관에서 찾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1769년 8월 15일 이태리 반도 왼쪽, 니스 아랫쪽 Corsica섬 Ajaccio에서 태어났다. 나폴레옹이 태어나기 전 코르시카는 프랑스에 점령당한 상태였다. 프랑크족도 아닌 코르시카 이방인이 프랑스 황제로 등극한 것은 정말이지 대단한 일이다. 나폴레옹은 코르시카에서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다 오탱 신학교에서 3개월만에 불어를 왠만큼 정복했다. 아버지가 코르시카 귀족가문 출신이라 나폴레옹은 브리엔 왕립군사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에 입학한 파리 사관학교 포병대생활 중에 나폴레옹은 왕성한 지식욕을 채우며 냉철한 지성과 상황판단력, 강인한 체력, 불굴의 의지를 기른다. 작은 키의 컴플렉스는 더이상 그의 의지를 꺽을 수 없었다. 건전한 자아상과 자신감이 넘치는 인물로 자라고 있었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귀족출신이었다면 아마도 당시 귀족정치와 군주정을 옹호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점령지 경험 속에서 자란 몰락한 집안 출신이라는 핸디캡이 그로 하여금 신분이 아니라 실력에 의한 사회지위 획득을 지지하게 만든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혁명이 무너뜨린 귀족정치를 옹호하며 쿠테타를 일으켜 민심수습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실력있는 사람이라면 출신지역과 출신성분에 관계없이 등용한다. 이런 인재등용이 나폴레옹 주변에 탁월한 참모들이 몰려들게 만든 계기기 된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혁명’의 아들이다. 혁명의 장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그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권력을 잡게된 인물이다. 1789년 유럽의 기존 질서를 완전히 뒤집어 엎는 사건이 일어난다. ‘민중혁명’이다. 루이16세와 귀족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군주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수립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기존 질서(앙시앙 레짐:구체제)는 무너졌지만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프랑스 혁명기간동안 나폴레옹은 고향 코르시카에서 인정받는 프랑스군 장교로 승승장구하게 된다. 기존 정치질서에 신물을 느끼며 혁명군을 지지한 나폴레옹은 툴롱에서 일어난 반혁명 봉기를 진압한 공적으로 여단장에 임명되었다가 1794년 이탈리아 원정군 포병사령관에 취임, 1796년 혁명정부에 의해 이탈리아 관할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다. 로디..아르콜레..리볼리 전투를 치르면서 이탈리아를 점령한 프랑스 혁명군... 이탈리아 민중들은 나폴레옹의 점령을 순순히 받아 들인다.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귀족정을 붕괴시키며 민중들의 억압을 해방하기 위해 원정왔다는 것을 홍보하면서 점령군이 아니라 해방군으로 이탈리아를 장악한다. 이탈리아를 점령하자 마자 법제를 정비하고, 치안을 유지하며, 기가막히게 빠른 시간 내로 사회 안정을 회복한다. 밀라노로 입정한 후 그의 입에서 구술되는 문장이 바로 헌법으로 기록 작성되어 법제화 된다. 한 사람의 머리로 공화국 하나를 건국해 내는 과정을 읽다보면... 이거 인간 맞아?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나폴레옹은 로마법과 역사의 흐름, 리더십, 군사 전략과 전술, 민심수습방안, 조직을 통한 국가 장악에 대한 탁월한 실력을 마스터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 원정을 성공리에 마무리한 나폴레옹은 국민의 영웅으로 파리로 개선하게 된다. 1789년 그는 다시 이집트 원정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이집트로 향한다.
나폴레옹이 이집트 동방원정을 위해 전초기지로 삼기위해 몰타를 정복하는 과정에 전투 한번 없이 무혈입성한 후, 몰타를 접수해버린다. 그 과정을 묘사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 그는 섬의 행정체계를 재조직하고, 그에 따르는 법전과 법령을 구술했다. 궁전의 중앙홀을 둘러보며 구술을 계속하던 그는 기사들의 紋章(문장) 앞에서 잠시 구술을 중단하고 생각에 잠겼다. 몇세기가 걸려 세운 이 나라를, 그는 단 몇 시간 만에 완전히 다른 국가로 만들었다. 그리고 열여섯 개의 항목으로 섬의 모든 행정을 정착시키고 귀족제도도 없앴다. 몇 세기를 지속해 온 모든 것을, 단 몇시간 만에 뒤집은 것이다. 그는 자신을 관찰하는 참모들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그에 대한 경탄과 존경심으로 몸이 얼어붙은 그들의 시선을... 그리고 포고문을 발표한다. ”
몰타섬의 주민들은 이제 프랑스 시민이며 공화국의 일원이다... 인간은 출생의 우연에 모든 것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장점과 재능에 따라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 >
나폴레옹은 항상 이런 식이다. 나폴레옹이 점령지를 쉽게 장악할 수 있었던 첫번째 이유는 기존계급질서 염증을 느끼고 있는 주민들에게 ‘태어나면서 부터 결정되버리는 운명같은 신분’에 대한 해방을 선언함으로, 점령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민중들의 호감을 산데 있다. 이는 나폴레옹인 군주정을 타파하고 공화정을 지지하는 발언이다. 프랑스 혁명이 만든 ‘공화정(국민투표로 선출된 대표가 통치하는 제도)’사상은 중세 봉건제와 근세 군주제(세습되는 왕이 통치하는 정치제도)를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넘겨버리는 혁명적 사상이다. 물론 공화정은 이미 그리스에서 그리고 로마에서 시행된바 있다. 그러나 로마 공화정이 원로원의 약화와 황제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공화사상은 불온사상으로 치부되고, 로마제국 몰락 후, 유럽은 갈갈이 찢어져 독자세력화 하면서, 중세 때는 특정 지역 봉건영주가, 근세에는 특정 민족국가를 장악한 군주(왕)이 절대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부패한 절대권력에 대한 반감이 폭발하면서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고, 이 위험한 혁명사상(공화정)의 전파를 위한 전도사로 자처하고 나선 리더가 바로 나폴레옹이었다. 유럽 모든 국가들이 나폴레옹을 볼온세력으로 몰아붙인 이유는 바로 혁명사상, 공화정이 자기 나라로 유입되어, 군주제가 붕괴될까봐 두려워서 그랬다. 아무튼 나폴레옹은 점령지마다 혁명사상을 유포하는 포고문을 붙이고 정치체제를 정비하며 민심을 수습하며, 프랑스 민중들이 열광하는 군사령관이 되었다. 혁명정부가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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