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 ‘문학의 숲을 거닐다’, 샘터
감수성 예민한 Handicap의 소유자 故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행동반경이 건강한 사람에 비해 턱없이 좁아진 인생을 살았다. 그러기에 그 좁은 범위 안에서 발견되는 소소한 것에 관심을 갖고 더 깊은 사색과 결함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맑은 영혼의 소유자가 되었다. 아버지 서울대 영문과 故장왕록 교수의 영향으로 영어와 문학을 접한 이래로 영문학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업이라 받아들이고 영어와 문학에 매진한다. 교수 실적으로 잡히지도 않는 신문 연재 북칼럼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가 그 책이다. 장영희교수의 책은 샘터출판사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모닥불 피워놓고 가슴 따뜻한 문학작품 해설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으면 이 책을 읽어보라.
한 칼럼만 발췌해서 올려본다.
Pearl S. Buck(1892-1973)은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이다. 중국에서 자랐고 동서양의 벽을 허물고 인류전체의 복지사회를 꿈꾸었던 평화주의 작가, 자선사업가로서 우리나라에도 혼혈아를 위한 재단을 세웠던 인도주의 작가이다. 그러나 내가 읽은 그녀의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은 책은 ‘대지’가 아니라 1951년 발표한 ‘자라지 않는 아아(The Child who never grew)’이다. 펄벅은 한국의 고아를 포함, 국적이 다른 아홉명의 고아들을 입양했지만, 그녀의 친자는 중증의 정신지체와 자폐증이 겹친 딸 하나 뿐이었다. 그녀가 ‘가장 어렵게 쓴 책’이라고 고백한 ‘자라지 않는 아이’는 최고의 명예를 누리는 작가로서가 아니라 장애 자녀를 낳아 길러 본 어머니로서의 체험을 마음으로 토로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생각하는 사람은 물론 나의 어머니이다. 기동력 없는 딸이 발붙일 한뼘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목숨 걸고 운명에 반항하여 싸운 나의 어머니. 장애는 곧 죄를 의미하는 사회에서 마음 속으로 피를 철철 흘려도 당당하고 의연하게 딸을 지킨 나의 어머니. 무엇보다 이 땅에서 배움의 기회를 얻는 것은 부모님과 내게 너무나 힘겹고 고달픈 싸움이었다. 업어서 교실에 데려다 놓고 밖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리시던 나의 어머니. 장애를 이유로 입학시험 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학교들을 찾아가 제발 응시만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사정하며 다니시던 나의 아버지. 아버지를 기다리며 초조하게 문간을 서성이던 나의 어머니.... 노벨문학상의 위업도 그 위대한 이름, ‘어머니’에 비할까... (pp.129-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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