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모방, 희생양 메카니즘, 집단폭력, 폭력의 교묘한 자기합리화인 신성화(성스러운 존재로 각색)..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태의 본질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René Girard의 평생작업에 경의를 표한다. 이 방대한 내용을 하나의 서평에 다 담을 수는 없다. 오늘은 희생양 메카니즘에서 중요한 하나의 테마 '무차별화'만을 설명해보자.
“박해자들을 줄곧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것은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무차별화이다.”
뭔소리야.. 책은 쉽게 써야 한다. 번역된 글이라서 어렵게 느껴지는 거겠지? 좋다. 내 말로 풀어보자. 세상 사람들은 통상 ‘차이 때문에 차별을 당하고 박해받는다’고 설명한다. 지능의 차이, 재산의 차이, 건강의 차이, 인종의 차이, 신념의 차이, 종교의 차이를 염두에 두고 있는 분들이 없는 놈들을 박해한다고 설명한다. 나도 이렇게 생각했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그를 박해하는 것이다.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박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르네 지라르는 다수가 소수를 대상으로 행사하는 폭력과 박해가 차이 때문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차이/차별이 박해의 원인이라는 논리가 교묘한 속임수란다. 진짜 원인은 무차별화, 즉 ‘차이가 없어질 때’ 박해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즉 내가 재산도 더 많고, 지위도 높고, 힘도 더 세고, 훨씬더 우월한데 그렇다면 특별대우를 해줘야 하는데.... 지극히 평범한 인간들과 동일하게 취급받을 때, 그 있는 분들이 열받아서 폭력을 행사하거나 괴롭히기 시작하는 것이다. 얼~ 맞다. 놀라운 통찰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참 겸손하고 성품 좋은 분이 있었다. 이 분은 허례의식이나 권위의식이 없는 분이었다. 특별대우 받는 것을 싫어하고 오히려 사람들을 섬기려고하는 분이었다. 보통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나면 그 분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본인이 사용한 식판을 직접 들고가서 짬시키고 숟가락과 젓가락, 물컵을 따로 모으고 식당을 나간다. 그걸 지켜보던 외부인이나 내부 동료들은 그분이 직접 식판을 정리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거나 아니면 “저 정도 지위 높은 분이 참 겸손하시네...”라고 쳐다보며 은혜(?)를 받는다. 그런데 매출액이 급격히 늘고, 회사 규모가 커지기 시작하자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밥 먹고 나서 식판들고 일어나는 그분을 향해 “주세요.. 제가 치우겠습니다.” “우째 직접 치우려고 하십니까.. 아랫사람들 시키시면되지...” 심지어는 주변 사람들한테 “뭐하는거야! 얼른 식판 받아드려. 직접 치우게 놔두는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이라며 핀잔주는 딸랑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분도 처음엔 “뭘 이런걸 딴 사람시키나... 내가 직접하면 되지..”라며 딸랑이들을 제재하셨다. 그런데 딸랑이들의 집요한 오지랖이 지속되자 그 분도 변했다. 지금은 당연히 밥먹고 나면 치우는건 ‘아랫 것들’이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식사 마치자마자 바로 일어선다.(사실 직원들과 같이 밥먹는 오너 정도면 아주 양호한편이다. 특권의식에 심하게 사로잡힌 분들은 아래 것들과 겸상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단지 식판치우는 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일과 의사결정과정에 그리고 사고방식자체에 ‘섬기고자 하는 마음’은 사라진다. 사람을 소모품으로 취급하고 군림하는 분으로 서서히 변해갔다. 이제는 자신을 특별대접하지 않는 분위기를 참지 못하는 분이 되었다. 딸랑이들이 왜 그 분을 특별대우하도록 분위기를 잡아갔을까? 그 딸랑이들 자신이 특별대우받고 싶은 것이다. 그 표현을 모시는 분을 떠받들므로 ‘니들도 나한테 그렇게 해줘’라며 분위기를 잡는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서로 섬기려고 하는 곳에 임한다. 일방적으로 섬기고 섬김을 받는 것은 군림과 굴종의 관계이지 섬김의 관계가 아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그 꼴이 보기 싫었으면 직접 세숫대야를 들고 제자들 발을 씻겼겠는가? 서로를 배려하려하고 서로 섬기려고하는 그 마음에 하나님나라는 이미 임했다. 세상을 군림하고 굴종하는 지옥으로 만들려는 인간들이 지겹다. 이 인간들은 윗사람 챙기는 것을 ‘예의’라고 우긴다. 묻고 싶다. 그렇다면 왜 당신들은 힘없고 돈없고 무식한 어르신들은 챙기지 않고 꼭 권력있고 지위높고, 학벌 좋고 돈 많은 사람들한테만 딸랑거리는가? 당신들이 그토록 외치는 예의가 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발휘되지 않는가? 오히려 약자를 더 배려해줘야 하는거 아닌가?
사람들은 차이로 인한 차별 때문에 박해를 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대우가 없는 '차이 없는‘ 상태를 견디지 못해서 남을 괴롭힌다.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라는 특권의식/특별대접에 젖어있는 사람들에 의해 상식과 원칙이 짓밟히고 있다. 반칙으로라도 이기기만 하면 끝이다. 그 반칙에 대해 문제재기조차 허용되지 않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상식과 원칙이 이루어지는 사람사는 세상은 아직은 ‘꿈’이지만 그래도 그 꿈을 계속 꾸련다. 서로를 배려하고 모두를 귀히 여기는 하나님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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