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여름 중국 운남성에서 동굴 관광을 한 적이 있다. 땅 속으로 한참을 들어갔다. 가이드가 갑자기 그 자리에 서라고 하더니 손전등과 주변 조명을 동시에 껐다. 암흑천지였다. 심연이 주는 두려움이 먼저 엄습했지만 조금 지나자 고요한 적막이 주는 평안함이 몰려왔다. 태고의 신비를 체험하는 순간 같았다. 굉장히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관광은 이런 체험상품을 팔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거공간으로서 집, 대화와 업무공간으로서 까페, 상품 선택 구매 공간으로서 쇼핑몰, 신성한 공간으로서 예배당, 한국 땅 주요 명당에 들어서 있는 절집의 가람 배치, 독특한 실내 인테리어, 미국 유럽 여행 중에 들린 수많은 박물관과 갤러리, 건축....
공간이 우리에게 보내는 끊임없는 메시지와 시그널에 인간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물론‘내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지?’라는 인식을 미쳐 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만큼 시각적인 공간의 자극은 절대적이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알게된 책이 ‘마음을 훔치는 공간의 비밀-왜 그곳에만 가면 돈을 쓸까?’였다. 저자는 Christian Mikunda라는 독일사람이다. 세계적인 공간연출 전문가이자 트렌드 연구가, 브랜드 마케팅 및 무드 매니지먼트 컨설턴트다. 쇼핑몰, 백화점, 놀이동산, 레스토랑, 미술관 등에 처음으로 체험 컨셉을 도입한 체험 경제의 선구자이자 전략적 연출법의 창시자로 잘 알려져 있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연극미디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0여 년 동안 TV 방송 기자로 일했다. 빈, 잘츠부르크, 뮌헨 등의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클라겐푸르트대학교, 튀빙겐대학교에서 객원 교수를 겸하고 있다. 하버드대학교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강연을 하는 한편, 기업 컨설턴트로서 자동차 산업, 쇼핑센터, 방송국, 박물관, 국제박람회 관련 연출법을 조언했고 여러 브랜드 전문 매장과 쇼핑몰을 개발했다. 현재 세계의 여러 도시와 조직을 연구하면서 트렌드를 발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제3의 공간》《영화 몸으로 즐기기》《금지된 장소, 연출된 유혹》 등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mikunda.com
책의 몇 부분을 발췌해 본다.
휴식이 연출되는 모든 무대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눕는 자세’다. 서점은 ‘수준 높은 게으름’을 피우던 장소였다. 오늘날의 서점은 이러한 면모를 되찾아야 할터였다. 2년 전만해도 유럽의 쇼핑몰에서는 휴식용 벤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쉬고 싶으면 쇼핑몰에 있는 카페를 이용하라’는 뜻이었다. 사람들이 쇼핑몰에 머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고, 쇼핑몰은 점차 삭막한 ‘판매기계’로 전락했다.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쇼핑센터에 고객을 위한 휴게 공간이 다시 들어셨고 ‘편안한 여유’를 선전하고 있다. 오늘날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여유개념을 주제로 도입한 현상이다. 라운지 없는 레스토랑이 거의 없고, 박람회장에는 전시대를 두 군데 지날 때마다 오아시스와도 같은 휴게공간을 설치한다. 호텔은 점점 고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장소로 변모하고 있다. pp.270-273.
두바이에서 차를 타고 모래언덕을 달렸다. 사막의 캠프에서 벨리 댄스와 뷔페의 향연에 빠져들었다. 그 향연의 절정은 매우 짧지만 대단히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1분간 캠프의 모든 불빛이 꺼졌다. 우리는 경건하게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도시의 불빛이 방해하지 않는 별밤하늘은 처음 맛보는 황홀감을 주었다. p.74.
로마 판테온 신전의 천장 한가운데 둥글게 뚫어놓은 구명을 오파이온(Opaion)이라고 부른다. 오파이온을 통해 신전 내부로 햇빛이 들어오면 돌로 지은 바닥은 빛을 받은 부분만 동그랗게 빛난다. 빛이 발휘하는 이와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 오늘날의 판매업계에서는 조광장치를 구비한 전시대를 이용한다. 슈투트가르트의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에서는 세상에 처음 선보이는 자동차가 이러한 전시대 위에서 빙빙 돌아가고 있다. 여기에 천장에서 내리꽂히는 불빛이 가세해 자동차를 더욱 빛낸다. 쇼핑몰에서도 누구나 갖고 싶어할 상품들은 이러한 조광 전시대를 이용해 강조한다. 후광의 표현방법은 바뀌었지만 그 효과는 여전히 강력하다. p.88
2006년은 크록스(Crocs)가 세계적으로 부상한 해이다. 발포수지로 만든 크록스 샌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발포수지는 원래 미끄럼 방지 기능을 갖춘 장화 생산에 사용된 원료인데, 크록스는 26가지 색상으로 제품을 만들었다. 진열대에 나란히 놓여있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알록달록한 사탕을 보는 듯한 효과를 낸다. 디즈니 만화 캐릭터로 샌들 구멍을 장식함으로서 크록스는 그 제품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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