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경찰로 근무하는 녀석한테 우편으로 책 선물이 왔다. ‘일본소설이지만 경찰 내부 문화를 엿보고자하는 의도로 본다면 한국 경찰과 싱크로 90%이상’이라는 메모가 첨부되어 있었다. 인문사회과학 서적만 디립다 파고 있던터라 ‘오호.. 간만에 기분전환 겸 범죄소설한번 읽어볼까?’라며 책을 펼쳤다. 스토리 자체는 그렇게 강력하지 않았다. 워낙 엽기적인 사건들이 매일 Non-fiction으로 신문에 보도되는 현실과 대비했을 때, 소설의 사건 전개 자체는 그렇게 자극적이진 않다.
스토리라인을 간단히 요약해보자. 2차대전 전범 히로히토 일왕이
죽던 쇼와 64년(1989년: ‘쇼와’는 히로히토 일왕 년호) 7살 짜리 여자아이가 유괴되어 살해된다. 그 대처과정에서 투입된 NTT(전화국) 출신 초짜 경찰의 실수로 유괴범의 전화통화 녹음이 되지 않아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버린다. 이 녹음미수사건을 당시 형사부에서 조직적으로 은폐한다. ‘고다’라는 형사만 욕먹더라도 사실을 유가족과 국민 앞에 밝히고 용서를 빌어야 된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전국민적 관심이 된 사건에서 이미 아이가 시체로 발견된 마당에 녹음미수까지 알려지만 경찰조직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에 지방경찰(현경) 형사부는 녹음미수사건 자체를 숨긴다. 14년이 지난 시점, 당시 말단으로 근무하던 미카미(소설의 주인공 話者)의 외동딸 아유미는 자신의 외모를 비관하며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있는데... 아빠와의 말다툼으로 인해 가출을 한다. 미카미 부부는 딸의 행방과 생사를 몰라 전전긍긍이다. 마침 이 때 집으로 말없는 전화가 하루에 3통화가 온다. 딸래미의 전화라고 확신한 미카미 부부... 전국 경찰에 아유미 수배령을 내린다. 이 와중에 신임 경찰청장이 64사건 담당 팀을 격려하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D현경을 방문하고자한다. 형사부가 집단 반발한다. 사정을 알고보니 지방경찰 출신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위직인 형사부장을 도쿄 중앙청의 캐리어(동경 엘리트 출신 낙하산?)로 갈아치우려는 경찰청의 음모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지방형사부가 알아차리고 방해공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인공 미카미는 지방경찰 출신이지만 현재 D현경에서 기자들을 다뤄야하는 홍보담당관 총경 업무를 맡고 있다. 도쿄출신 본부장과 경무부 소속으로 그들의 비위를 맞춰야 생존이 가능한 홍보담당관이라는 보직이 힘겹기만 하다. 기자들 또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찰과 신경전을 벌인다. 그 사이에 끼어 조정업무를 하는 미카미는 죽을 지경이다. 이 때 14년전 64사건과 동일한 패턴의 여고생 유괴사건이 터진다. 신임청장의 순시는 무산되고, D현경은 초비상 상태에 돌입한다. 전화녹음, 차량추격, 핸드폰 위치 추적, 사건 대처과정 언론 통보... 정신없이 돌아간다. 범인은 돈을 준비한 여고생 아버지에게 전화로 만날 위치를 알려주는데... 64사건 때 범인이 지정했던 바로 그 위치로 뺑뺑이 돌린다. 마지막 위치에서 돈을 드럼통에 쑤셔넣은 다음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일 것을 명령한다. 그걸 지켜보던 잠복경찰들... 그 무리 사이에 범인이 있다. 알고 봤더니 그 범인은 64사건 때 7살 여자 아이를 잃은 아버지다. 14년전 딸을 잃은 아버지가 왜 동일한 패턴의 고통을 여고생의 아버지에게 돌려준 것일까? 도대체 어떻게 범인을 찾아낸 것일까? 그냥 죽여버리지 왜 뺑뺑이를 돌린 것일까? 그가 범인이 맞나? 내용 요약은 요까지.. 더 발설하면 스포일러가 될테니...^^
책 내용보다는 책의 서술 형태와 관점이 특이했다. 통상 범죄/추리 소설은 스피디한 속도로 사건 전개가 굉장히 빠르다. 반전도 많다. 서너개의 스토리가 서로 교직되어 전체와 부분이 서로 연결된다. 그런데 이 소설은 서술 방식이 다르다. ‘사건’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이다. 콜롬보나 셜록홈즈 같은 탁월한 해결사도 없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사들... 실수도 하고, 자리에 연연하여 눈치도 보는... 정치적으로 자신 입지를 넓히기 위해 조직과 사람을 이용하는 윗대가리들, 여기붙었다 저기 붙었다하는 기회주의자들... 그 무엇보다 각 개인들의 심리묘사가 탁월했다. 그래서 독백이나 상대방의 생각을 추측하는 내용이 많다. 경찰이라는 조직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지만, 각 등장인물의 속마음을 훓어보는 묘한 재미도 있다. 경찰과 언론의 관계, 경찰 내부의 갈등, 부서간 갈등, 중앙과 지방의 갈등, 여경들의 입장 등등.... 사건 전개에 집중하기보다 경찰조직으로 대표된 우리 사회 전반의 구조적인 면을 들여다보고 고민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 요코야마 히데오(横山 秀夫)는 12년동안 신문기자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그러니 언론과 경찰의 미묘한 갈등을 이토록 잘 묘사할 수 있었던 걸꺼다. 작년 올해 일본에서 엄청 팔아먹은 책인거 같은데... 한국 판권은 시공사(대표 전재국... 그 분 장남..ㅎㅎ)가 갖고 있다. 검은숲은 시공사 계열 도서 브랜드다. 번역은 깔끔하다. 간만에 범죄추리 소설에 푹~빠져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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