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창작과비평사
95년 출간된 이 책으로 홍세화씨는 세상에 알려졌다. 그 전엔 한국에서 흔적도 없이 묻힌 인물이었다. 학벌로는 KS사단(경기고-서울대)이다. 공대에 입학해 때려치우고 두해 뒤 다시 시험을 봐서 외교학과에 재입학한다. 졸업 후 무역회사 유럽 해외지사 근무차 출국했다가 대학시절 가담했던 남민전 사건이 불거지면서 망명 아닌 망명객이 되어 빠리에서 관광안내, 택시운전을 하며 살았던 사람이다. 그가 들려주는 유럽과 프랑스 문화 이야기는 여행 탐방기도 아니고, 문화유적 답사기도 아니다. 신변잡기식 유럽 들여다보기도 아니다. 고국에 대한 회한과 연민을 눈물로 삼키면서 에뜨랑제(이방인)으로 프랑스에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속 깊은 고민들을 풀어놓았다. 홍세화의 역사의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매력적이다. 이 책을 통해 빠리와 프랑스, 그리고 유럽을 좀더 우리 시각에서 깊이 있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분명한 역사의식과 깊은 고민을 가진 홍세화가 아니라면 평생을 프랑스에 살아도 알지 못할 얘기들이다. 책을 읽는 동안 그의 입장이 되어본다. 그런데 괜시리 속이 아련해 온다. 영국과 미국에 치우친 시각을 프랑스 렌즈를 통해 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 홍세화선생한테 감사한다.
*과 선배 이상엽형이 찍은 홍세화 선생
이 책에서 몇가지 자극 받은 내용 2가지를 그대로 옮겨본다.
1. 맹목적 편가르기의 지긋지긋함
Q: '너 어디서 왔니?‘
A: ‘꼬레...’
Q: “Nord ou sud(노르 우 쉬드)?” 북쪽 아니면 남쪽?
A: “꼬레, 꼬레 뚜 꾸르(꼬레.. 그냥 꼬레요)” 이 대답은 나의 아집같은 것이었다.
2. 똘레랑스
똘레랑스는 원래 ‘허용 오차’를 뜻하는 공학용어인데,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되어 ‘특별한 상황에서 허용되는 자유’라는 뜻이 된 것입니다. 똘레랑스의 첫 번째 말뜻이 ‘나와 남 사이의 관계’ 또는 ‘다수와 소수 사이의 관계’에서 나와 남을 동시에 존중하고 다수가 소수를 포용하기 위한 내용을 품고 있다면, ‘특별한 상황에서 허용되는 자유’라는 똘레랑스의 두 번째 말뜻은 권력에 대하여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려는 의지를 품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똘레랑스는 ‘권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금지되는 것도 아닌 한계자유’를 뜻합니다. 이러한 똘레랑스에 익숙해 있는 프랑스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관료주의와 권위주의입니다. 관료의 편의주의와 일률적인 규격화에 반대하고 규정을 잘 지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꼭...하라’ 또는 ‘....하지 마라’라는 구호나 지시를 아주 싫어합니다. 그러나 똘레랑스가 흐르는 프랑스 사회에서도 권력의 남용이나 공직을 이용한 부정부패는 절대로 용서되지 않습니다. 2차대전 직후 나찌 협력자에 대한 처벌은 철저했었지요. 독일의 게슈타포보다 더 악독한 사람들이 바로 프랑스인 부역자들(콜라보)인데, 나찌 패망 후 7만명이 처형당했다. 콜라보를 처리하는데는 똘레랑스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어요. 똘레랑스는 역사의 교훈입니다. 똘레랑스는 극단주의를 외면하며, 비타협보다 양보를, 처벌이나 축출보다 설득과 포용을, 홀로서기보다 연대를 지지하며, 힘의 투쟁보다 대화의 장으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권력의 강제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합니다.
몽케스키외는 이민족에 대한 똘레랑스를 강조했고, 볼테르는 이교도에 대한 똘레랑스를, 루소는 정치적 이념상의 똘레랑스를 특히 강조했다.
* 홍세화 선생한테 처음 배운 똘레랑스라는 개념에 관심이 가서 그가 직접 번역한 필리프 사시에의 ‘왜 똘레랑스인가’도 재밌는 책이다. 나중에 소개하겠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