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6일 수요일

이은성, 소설 동의보감, 창작과비평사

이은성, 소설 동의보감, 창작과비평사
      
허준, 기록된 역사에 별로 알려진 것이 없는 그의 삶과는 상관없이 그가 남긴 동의보감이라는 책만으로도 충분히 존경받고 인정할만하다. 존경하고 따르고 싶은 모델이 없는 세상에서 허구로라도 위인을 만들어 닮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일까? 소설 동의보감은 Fiction이다.
지금은 어르신이 된 연로한 의사선생님들 중에는 ‘왜 의대를 갔느냐?’는 질문에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서’라는 순진한(?) 대답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 의대를 진학하는 아이들(?)을 보면 봉사와 섬김이라는 대의는 옛날 철없을 때 하는 이미지 관리용 발언 즈음으로 안다. ‘돈 많이 벌고, 인정받는 안정적인 직업이잖아요’라는 너무 당당한(?) 대답에 아직 철이 들지 않은 나는 당혹스럽다.
의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건 목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동일한 질문이라 생각한다. 물건파는 것도 마찬가지다. 의사,목사 뿐아니라 장사는 어떻게 해야되는가? 동일한 질문이다. 현 시대는 대의, 명분, 정의, 명예... 이런 건 별로 따지지 않는 시대다. 이득만 따지는 이해관계만 판치는 세상이다. 그래서 나는 실용주의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 자신이 실제적인 것을 좋아하면서도 실용주의에는 뭔가... “동기와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만들어 내면 되는거 아니냐!”는 승자의 무서운 논리가 보이기 때문이다.
의도와 과정까지 공정하고 정당하면서 결과를 도출할 수는 없는걸까? 세상은 결과를 요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열매가 없는 핑계를 그럴싸한 동기와 과정으로 미화하는 것도 거부한다.(교회서 특히 이런 짓 많이 한다.) 하지만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잘못된 의도와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더 싫다.
여기 순수한 동기로 시작해, 투명한 과정을 거쳐, 정당한 방법으로 대단한 결과를 만들어낸 인물이 있다. 물론 실존 인물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작가가 지어낸 인물이다. 허준!
의사는 모름지기 이 소설에 나오는 허준같기를 바라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욕심인가? 나는 털어서 먼지 날 것도 없는 목사이기를 날마다 살핀다. 죽어 하나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크게 걸릴게 없는 삶을 살고자 몸부림친다. 의료현장에서도 허준 같은 의사가 이 시대에 나오기를 기대한다. (현대판 허준 복음병원 장기려박사는 다음에 소개하겠다) ‘소설 동의보감’을 읽는 내내 ‘목회자도 이래야 되는데... ’라며 목회 지침을 얻는 심정으로 읽었다. 특히 유의태와 허준의 스토리를 보면서.. 이건 뭐 완전히 제대로된 ‘제자훈련’이었다.
소설 동의보감은 MBC 이은성 작가가 쓴 소설이다. 1977년 ‘집념’이라는 허준 드라마를 위해 쓴 방송 시나리오를 나중에 보충해서 소설로 쓴 것이 ‘소설 동의보감’이다. 상중하 세권으로 되어 있는데 마지막 권 끝을 읽어보면 이상하다. 중간에 짤린 것처럼 느껴진다. 맞다. 원래는 춘하추동 4권으로 구상해서 집필하던 중 서울 올림픽 있던 88년 심장병으로 이은성작가는 돌아가셨다. 미완의 작품으로 남겨진 유고를 90년 창작과비평사에서 상중하 세권으로 출간한 것이다. 이 소설을 기반으로 해서 1999-2000년 최완규작가와 이병훈PD가 ‘허준’ 드라마를 제작했다. 이게 대박이었다. 이해득실만 따지는 얍삽한 꾼들만 드글거리는 세상에 대의를 실행에 옮기는 드라마 허준이 한국민의 정서를 자극한 것이다. 우리시대에 義(의)를 논할 수 있는 자기정당성을 가진 정치 지도자들이 몇 명이라도 나와줬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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