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책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할 점이 저자가 누구냐를 확인하는 것이다. 저자의 학벌과 지명도를 보고 책을 고르라는 것이 아니다. 그 책을 쓴 사람의 인생여정과 사상의 편력, 성장배경을 보면 이미 그 책의 수준이 가늠된다. 주어진 짧은 인생을 쓸데없는 책을 읽느라 낭비할 필요는 없다. 이런 점에서 김석철이라는 저자는 기꺼이 추천할만하다. 대부분 건축가가 쓴 건축관련서적은 공돌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가끔가다 주워들은 지식을 끌어다붙여 현학적인 글을 써서 뭔가 아는 척하는 건축가의 책도 볼 수 있다. 김석철은 적어도 그런 사람은 아니다. 그는 인문학적인 지식이 풍부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노출된 여건에서 자랐다. 그의 집안내력, 유년시절의 경험, 학창시절에 영향을 준 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가 단순한 건물에 집착하는 엔지너어가 아니라 인간과 문화와 도시와 건축을 아우르는 폭넓은 시각을 가진 건축가임을 알 수 있다. 97년 첫출간한 ‘세계건축기행’은 세상 곳곳에 당시 문화를 응집한 형상물로서의 건축물을 탐방하며 그가 느낀 감정과 그 건축을 통해 깨달은 바를 기행문 형식으로 쓴 글이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미술과 건축, 음식, 공연 등이 전부이다. 건축을 모르면 여행이 답답해진다. 건물 앞에서 사진 찍고 ‘나 여기 다녀왔다’는 증거를 남기는 수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건축을 좀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김석철의 책을 읽었다. 참 많은 도움이 되었다. 건물(Building)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건축(Architecture)를 보는 시각을 키울 수 있는 좋은 책이라 기꺼이 추천한다. 건축에 문외한인 사람에게 건축에대한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구미를 당겨주는 입문서적으로 안성맞춤인 책이다.
김석철
이 책 또한 건축가 김석철의 여행기다.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경식의 서양미술 순례처럼 기행문이다. 나는 정치학과 신학을 전공한 목사이기에 어딜가면 거기의 역사적 의미와 거기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통해 세상과 인간실존을 보기 원한다. 한 걸음 더 나가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떠올려본다. 여행하는 사람은 저마다 자기 시각에서 자기 관심 분야를 근거로 눈알을 굴리고 냄새를 맡게 되어 있다. 김석철이 가본 24개의 건축물과 도시를 나는 언제 다 가보려나... 여행은 도시와 건축, 예술... 그리고 거기 사는 사람들과 과거를 보러가는 것일진데, 4가지 요건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 돈,시간,체력.. 그리고 같이 갈 사람... 나는 이 4가지가 여행의 4요소라고 확신한다. 이건 내가 여행을 다니면서 경험적으로 깨달은 사실이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다. 돈과 시간이 준비되면 늙어서 체력이 없고, 돈/시간/체력이 준비 되었으면 같이 갈 사람이 없다. 네가지 전부가 갖추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2-3가지 요건이라도 마련되면 형편 되는데로 떠나보는 것이 여행을 할 수 있는 ‘지름’이리라.
암튼 이 책에서 곱씹어 볼만한 문장을 직접 인용해 본다.
“건축과 도시는 인간의 역사를 증언하는 상형문자였다. 우리의 도시가 문화 인프라보다 私有(사유)의 공간에만 관심을 두는 이기적 도시인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역사 이전의 도시나 마을에는 건축과 도시의 이원개념이 없다. 건축은 도시의 부분이고, 도시는 건축의 집합이다. 건축의 외부공간은 도시의 내부공간이고 건축형식은 도시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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