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일 금요일

박완서, 한말씀만 하소서, 세계사

이 책을 통해 참척(慘慽)이라는 어휘를 처음 들었다.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죽은 경우를 일컸는 말이다. 박완서 서울대 나온 여성 소설가로 알았다. 문장의 깊이와 표현력에 여성특유의 감수성까지 그냥 대단한 문필력을 가진 아줌마인줄 알았다. 그러다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세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생계를 꾸려야 하는 딸이었음을, 대학2학년 때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서울대를 중퇴하고 전란이라는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이라는 것을, 결혼하고 딸,딸,딸,딸,그리고 막내 아들 순으로 1남4녀를 둔 엄마였음을, 5남매를 두고 남편이 병사했음도, 그리고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그해 1988년 의대 졸업하고 레지던트과정을 밟고 있던 아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병원과 집을 오가는 피곤한 상황을 안타까워하다가 파란색 프레스토 자가용을 사줬는데 그만 교통사고로 아들이 죽어버리는 경험을 한 파란만장한 사연 많은 할머니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인간실존의 아픔을 다 끌어안은 삶을 보냈기에 그의 글에서 그런 깊은 통찰과 인간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국같은 표현이 가능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지만 그 경험을 통해 사람의 생각과 세상을 보는 시각과 인생에 대한 이해가 차원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인정한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알겠는가 그 고민과 몸부림의 정도를...
이 책은 아들이 죽은 이후 자신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다 드러낸 절절한 에미의 내면일기이다. 비록 석달동안의 일기형식으로 쓰여진 비탄의 글이나 박완서의 아픔이 그대로 전달되 오는 글이다. 카톨릭신자인 저자가 ‘생활성서’라는 잡지에 1년간 연재한 글을 모아 출간한 책이 ‘한 말씀만 하소서’이다. 책 이름처럼 그녀는 하나님께 대들고 대들고 또 대들었다.
박완서는 그 때 심정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만일 그 때 나에게 포악을 부리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그분(하나님)조차 안 계셨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저 만만한 건 神(하나님)이었다. 온종일 신을 죽였다. 죽이고 또 죽이고 일백 번 고쳐 죽여도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신, 증오의 마지막 극치인 살의(殺意), 내 살의를 위해서도 당신은 있어야 돼. 나는 신의 생사를 관장하는 방법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고, 특히 그 종잡을 수 없음과 순서 없음에 대해선 아무리 분노하고 비웃어도 성이 차지 않았다.”
일찍 아비 잃은 아픔과 한참 재밌을 때 남편 잃은 아내의 아픔, 5남매 중에 막내로 얻은 아들을 輪禍로 보내버린 어미의 아픔, 이 삼중고에 갖혀버린 여자의 심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글을 쓸 수 있어 견딜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책을 통해 박완서와 그의 글을 다시 보게 되었다. 현재까지는 현대 여성 소설가로서 최고봉은 박완서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감수성만 자극하는 얄팍한 여자들의 글이 넘쳐나고 있는 현재에 박완서는 급이 다른 문학가이다.
이 책을 소개해준 이용희목사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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