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4일 월요일

Ruth Benedict, '국화와 칼' (을유문화사:1991)

Ruth Benedict, '국화와 칼' (을유문화사:1991)

1.導入

1)書種
이책은 문화 인류학이라는 학문의 방법론에 의거하여 일본인의 행동양태를 그 문화적 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는 일본문화형을 탐구한 학술서적이다.

2)目的
이책은 2차대전 말기에 미 국무성의 요청으로 저자가 연구를 시작한 데서 알수 있듯이 전쟁 당시 敵國이었던 일본인들의 사고와 행동양태를 앎으로서 미국(연합군)이 일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즉 전쟁중 일본인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를 예측하는 것과 종전후 일본을 어떤 방식으로 통치해야 할 것인가를 알고자하는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연구된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저자는 머리말에서 연구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1944년 6월이 되자 대독전쟁의 종말이 눈앞에 보였다.따라서 다음과제는 태평양의 일본이 문제였다.우리는 우리의 적 일본에 관한 수많은 의문에 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젔다. 문제가 군사상의 것이든, 외교상의 것이든, 최고 정책에 관한 여러 문제에서 일어나는 것이든, 일본군 前線의 배후에 떨어뜨리는 선전책자에 관한 것이든,모든 통찰이 필요했다. 싸우고 있는 일본의 총전력에 관해 우리가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비단 도쿄에 있는 지배자들의 목적이나 동기, 긴 일본의 역사, 경제나 정치의 통계만은 아니었다. 우리는 그들의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리는 일본인의 사상/감정의 습관과, 그러한 습관에 잠긴 문화의 型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행동이나 의견의 배후에 있는 강제력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우리가 미국인으로서 행동하는 동안의 前提를 잠깐 옆에 제쳐놓고, 될 수 있는 한 어떤 주어진 상황을 바탕으로 하여, 일본인이 행하는 행동이 우리가 행하는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단정하는 안이한 결론으로 비약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 . . . . 문제는 일본인이 어떤 식으로 행동을 하는가에 있었지, 만일 그들과 같은 처지에 놓일 때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에 있지 않았다.나는 전시중 일본인들의 행동을 이해함에 있어,부정적인 요소로서가 아니라 긍정적인 요소로서 그것을 이용하도록 노력해야했다, 나는 그들이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을 군사적 문제로서가 아나라 문화적 문제로서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이상에서 본 저자의 연구목적을 살펴보면 일본인과의 전쟁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수행할 것인가,즉 전쟁추이에 따라 발생가능한 나타날 수 있는 그들의 행동을 예측하기 위해 연구는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3)著者紹介
Ruth Benedict(1887 - 1969)는 영국 태생이며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에서 인류학 과장으로 봉직하였다. 그녀의 대표작은 <Patterns of Culture,1934>, Race:Science and Politics. - 1940)>,등이 있다.

2.內容
먼저 저자는 전쟁중 나타난 일본인들의 행동을 서구인들의 사고방식과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있다.예를 들면 ‘항복’을 통해 서구인과는 다른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을 알수있다. 서양의 군인들은 최선의 노력을 다한 후에,衆寡不敵이란 점을 알면 항복을 한다. 그들은 항복한 뒤에도 여전히 자기들을 명예 있는 군인이라 생각하며, 그 명단은 그들이 살았음을 가족에게 알리기 위해 본국으로 통지된다.그들은 군인으로서도 국민으로서도 또 그들 자신의 가정에 있어서도 모욕을 받지 않는다.그렇지만 이 경우 일본인은 사태를 전혀 다른 식으로 규정한다. 일본인에게 있어 명예란, 즉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었다. 절망적 상황에 몰렸을 때에는 일본군은 최후의 수류탄 하나로 자살하든가 무기 없이 적진에 돌격을 감행하여 집단적 자살을 하든가 그 둘 중의 하나이지 결코 항복하지 않는다. 만일 부상했든가 기절하여 포로가 된 경우조차도 그들은 “일본에 돌아가면 얼굴을 들고 걸을 수 없다.”고 여긴다. 그들은 명예를 잃었다. 그 이전의 생활에서 본다면 그는 ‘죽은자’였다.또 다른 서구의 병사들과 일본 병사들 사이의 가장 현저한 차이는 일본병사들이 포로로서 연합군에게 협력한 점이다. 그들은 이 새로은 상황에 적응하는 생활 규칙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명예를 잃은 자미여, 일본인으로서의 그들의 생명은 끝났던 것이다.포로들이 전쟁의 결과가 어쨌든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게 된 것은, 전쟁이 끝나기 몇 개월 전이었을 뿐이다. 어떤 포로는 죽여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당신들의 관습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나는 모범적인 포로가 되겠소”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모범적인 포로 이상이었다. 고참 군인으로 오래도록 군대 상활을 한 극단적인 국가주의자였던 그들은, 탄약고의 위치를 알려 주며,일본군의 병력배치를 세밀히 설명해 주고,미군의 선전문을 쓰고,미군의 폭격기에 동승하여 군사 목표로 유도해 주었다. 그서은 마치 새로운 페이지를 넘기는 것 같았다. 새로운 페이지에 씌어진 것과 낡은 페이지에 씌어진 것은 정반대였지만, 그들은 그 구절을 한결같이 충실하게 읽었다.일본인은 어떤 하나의 행동 방침에 모든 것을 걸며, 만일 그것이 실패할 때는 다른 방침을 취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또 저자는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라는 제목으로 일본인들의 계층제도에대한 의식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일본인들의 계층의식을 일본의 역사과정,즉 7,8세기의 봉건제시대와 수백년동안 계속된 막부정치시대를 통해서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서구인들에게 있어서 평등은 보다 좋은 세계를 향한 희망에 대한 가장 높고 가장 도덕적인 기초이다. 그것은 우리들에게는 압제와 간섭과 원치 않는 무거운 짐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그것은 법률 앞의 평등과 각자가 스스로의 처지를 개선하는 권리를 의미한다. 그굿은 오늘날 세계에 있어서 조직적인 형태로 실현되고 있는 기본적 인권의 가장 밑바탕이 된다. 서구인들은 그들 스스로가 평등을 침해할 때조차도 평등의 덕을 지지한다. 그리하여 올바른 분노를 가지고 계층제도와 싸운다. 특히 미국은 이 세계의 사람들은 참으로 서로 평등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의 사회적 교제는 새롭고 또한 쉬운 발판 위에 있었다. 그들은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 말한다. 미국인은 계층적 예의 범절에 대한 세심한 배려에 구애되지 않는다.그들은 그러한 예절을 타인에게 요구하지 않으며, 또한 타인에게 베풀지도 않는다. 그들은 누구의 恩義도 받지 않고 있다는 점을 좋아한다. 여기에는 낡은 귀족제적인 , 또는 로마적인 의미에서의 가정이란 것이 없고, 구세계를 지배해 온 사회 계층제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러한 미국인은 다른 무엇보다도 평등이라는 것을 굳게 믿는다. 자유까지도 그들은 한눈을 파는 동안, 가끔 실제로는 놓치지만 평등은 온몸으로 실천한다. 이에 反해 일본인의 ‘알맞은 위치’라는 그들의 신념을 표명한 것은 스스로의 사회적 체험에 의해서 그들 속에 깊이 박힌 생활 원리에 근거산 것이다. 불평등이라는 것이 몇 세기 동안을 통해서 정말로 가장 용이하게 예언되고, 또 가장 널리 일반에게 시인됨으로써 그들의 조직된 생활규칙으로 확정된 것이다. 계층제도를 인정하는 행동은 그들에게는 숨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일이다.그러나 이것이 단지 서구의 강권주의는 아니다. 지배권을 생사하는 것도, 타인의 지배를 받는 것도 우리들 자신의 전통과는 다른 전통에 속하는 행동이다.일본인들의 위치차이는 단순한 계급적 차이는 아니다. 성별이나 연령, 두 사람 사이의 가족 관계나 종래의 교제 관계등이 모두 필수적인 계산에 포함된다. 아래로는 천민에서,위로는 천황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명확하게 규정된 형태로 실현된 봉건시대의 일본 계층 제도가 근대 일본 속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봉건제도가 법적으로 종말을 고한 것은 요컨데 겨우 75년 전일 따름이다. 그 뿌리 깊은 국민적 습성이 겨우 인간의 일생에 불과한 75년이라는 짧은 기간내에 소화도리 수는 없는 일이다.

저자는 메이지 유신이라는 세계역사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형태의 근대화를 유신의 주체와 슬로건 근대화정책의 독특한 추진방법등을 일본인 들의 행동양태와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다. 또 저자는 일본인들은 현재 자신의 존재를 과거의 모든 사람과 세상의 恩德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그 온(恩)을 갚기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일본인들의 행태를 孝와 忠이라는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또 일본인은 오명을 씻는 기리(義理)를 대단히 중요시하고 이 오명을 씨기 위해서는 보복도 서슴지 않는 행동양식을 서술하고 있다.저자는 ‘人情의 세계’라는 章에서 연애와 결혼을 동일시하는 이상을 내걸지 않는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을 서술하고 있다. 서구인들은 연애를, 그것이 배우자 선택의 기초가 될 정도에 비례하여 시인한다. “연애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가장 훌륭한 결혼의 이유가 된다. 결혼 후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육체적으로 끌린다는 것은 그의 아내를 모욕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연히 아내의 소유로 돌아가야 할 것을 다느 사람에게 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인은 이와 다른 견해을 갇는다. 배우자의 선택에 즈음하여 청년은 부모의 선택에 따라 맹목적으로 결혼한다. 그는 아내와의 관계에 있어서 매우 완고한 형식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화목한 가정 생활 속에서조차, 아이들은 부모가 성애를 표현하는 행동을 볼 수 없다. 어떤 잡지에서 현대의 한 일본인은 말하고 있다. “이나라에서 결혼의 참다운 목적은, 아이를 낳고, 이에 의하여 집안의 생명을 존속시키는 데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이 이외의 목적은 어느 것이나, 다만 결혼의 참다운 의미를 왜곡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그렇지만 이 사실은 결코, 일본의 남자가 그와 같은 생할 속에만 갇혀, 품행 방정하다는 것은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여유가 있다면 남자는 情婦를 갖는다. 단 중국과 크게 다른 것은 반한 여자를 가정의 일원으로 맞아들이지 낳는 것이다.또 일본인들은 배짱을 기르고 大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기위한 육체적,정신적 자기 수양을 대단히 중요시한다. 그들은 이 자기수양이 자신에게도 유익하지만 사회에도 이익을 가져다 줄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의 아이양육방식은 처음에는 자유가 주어지지만 어느정도 인식능력을 가진정도로 자라면 무서우리만치 철저한 사회화,즉 일본사회에 맞는(적응하는) 교육을 실시한다.마지막으로 저자는 ‘패전후 일본인’이라는 장에서는 2차대전을 일으킨 일본의 잘못과 군국화의 오류를 설명하고 재무장을 경고하고 있다.

3.맺음말
처음 책 제목을 보고는 일본의 고전 소설인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보니 이건 하나의 日本文化論이다. 내가 지금 이 서평을 쓰는 초점은 이 책의 내용이 아니라 인류학을 전공한 저자가 일본이라는 지역의 인간행태를 인류학적 문화적 접근법을 사용하여 연구하고 있다는 방법론에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 책,저자의 연구방법은 될 수 있는 한 객관적인 입장을 취할려고 저자 자신이 일본을 단 한 번도 방문을 하지 않고 수집된 자료만으로 일본의 문화를 분석했다는 점이 굉장히 독특하다. 또 저자가 일본의 문화의 틀을 분석함에 있어서 그들이 쓰는 용어를 가능한한 정확히 이해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책 곳곳에서 역력하게 보인다. 또 저자는 일본문화의 분석을 위해 일본의 문학에 나타난 인물을 가지고 설명하기도 하고 잡지,일본 역사서,전쟁중 일어났던 일화들에 이르기 까지 아주 다양한 분석 접근 방법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이 책이 자기의 단순한 경험에의해 이루어지는 신변잡기식의 일본 인상기가 아닌 학술적 연구 논문이 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요소로 파악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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