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철주,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효형출판
미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책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곰브리치와 다카시나 슈지의 책이 개중에 가장 눈에 띄었다. 이 두 책을 읽고 난 뒤, 우리나라사람이 재밌게 쓴 미술이해서적은 없을까... 그러다 발견한 책이 손철주씨의 ‘그림, 아는만큼 보인다’는 책이다. 손철주씨는 신문사에서 문화부 미술기자로 오랫동안 미술현장을 취재한 사람이다. 지금은 학고재 편집주간으로 있다. 서양미술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동양화.. 그리고 한국화가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다. 본서 서문에서 밝히듯이 저자는 미술의 이해의 폭을 넓히거나 미술의 원리, 미술사의 흐름을 파악할 요량으로 이 책을 쓴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신문에 연재했던 가벼운 글들을 서울대 김병종교수의 닦달로 조금 손봐서 책으로 엮었다고 적고 있다. 그림에 대한 그렇게 심도 있는 분석이나 화가에 대한 깊은 이해는 없다. 그러나 가볍지만 한국미술, 동양미술, 서양화를 종횡무진 휘젓고 다니면서 쓴 책이라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손철주의 글은 맛깔나다. 그림을 사랑하는 한국사람의 입장에서 우리 그림과 서양, 동양화를 설명하는 시각이 있어 이 만한 책이 없다 싶어 기꺼이 추천한다. 게다가 중세, 근대, 최근 현대미술의 동향까지를 작가와 그림별로 서술하고 있어 읽는 재미가 더 하다.
책 읽다 줄처 놓은 부분 두 문단만 그대로 옮겨보자.
살아서 일부러 전설을 만들고자 애쓰는 작가를 향하여 Herbert Read(미술 평론가)는 “예술가에게 있어 전설은 가장 확실한 성공수단이다. 남의 눈을 끌기 위한 행동에 급급한 작가들, 그것은 결국 ’請負(청부)예술‘에 지나지 않는다. 살바도르 달리나 조르주 마티유가 그런 사람이다.”라고 일갈했다. 하나의 전설은 성공의 확실한 수단이 된 예는 서양미술사에도 흔하다. 피카소의 화려한 여성편력, 고갱과 반 고흐의 광적인 교유와 자살소동, 모딜리아니의 밑바닥 삶, 잭슨 폴록의 방자함 등은 후대에 형성된 신화를 풍성하게 했고 결과적으로 그들이 남긴 작품은 엄청난 고가를 보장받았다. 햇볕에 바라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문명의 햇빛이 쨍쨍할수록 신화의 기슭은 짙다.
‘프라도 미술관에 불이 난다면 당신은 무엇부터 구할 것인가’ 누가 프랑스 시인 장 콕토에게 먼저 물었다. 콕토가 거만스럽게 내뱉은 말은 ‘나는 그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겠다’였다. 별 것도 아닌 그림들, 깡그리 다 타도 좋으니 불구경이나 하자는 심보다. 그래놓고 콕토는 곁에 있는 자칭 천재화가 살바도르 달리에게 넌지시 눈짓으로 ‘당신은?’하고 물었다. 그의 주저 없는 대꾸가 점입가경이다. ‘나야 당연히 空氣를 살리지’ 프라도가 타봤자 대기오염밖에 더 시키겠느냐는 이 뻔뻔스런 농짓거리를 동족인 스페인 국민이 들었다면 아마 복장이 터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참 뒤 정작 달리에게 ‘한 작품만 두고 당신 작품을 다 태워야 한다면 어느 것을 남기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금방 노기 띤 얼굴로 ‘내가 왜 태워’ 했다나... 언제 어디서나 그렇듯 대가의 졸작이 있고, 무명의 걸작이 있는 것이 예술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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