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 전국시대1-5, 고려원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출판업계를 휘어잡은 회사가 있었다. 고려원이다. 현대건설이 한국 건설업계에서 인력pool 역할을 감당했듯이, 증권업계에서 대우증권이 그렇듯이, 고려원은 한국 책시장에서 97년 과도한 어학도서 투자로 부도가 나서 없어지기 전까지 인력 pool 기능을 담당하는 거대출판사였다. 당시 유명한 베스트셀러들은 거의 전부가 고려원에서 냈다.
중국 춘추시대(BC 770-403)와 전국시대(BC 403-221) 자료 중에 발췌를 해서 소설형식으로 5권을 묶어낸 책이 ‘전국시대’다. 저자는 소설가 조성기, 경기고 서울 법대 출신인데 대학 재학 중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되서 등단했다. 장신에서 신학을 하고 목사 안수를 받기도 했는데, 현재는 숭실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가르치고 있다. 내가 가진 이 책은 절판됐다가 97년에 둥지에서 ‘난세지략’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간된 걸로 알고 있다. 여러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현대 감각에 맞게 재해석하고 소설로 풀어놓은 책이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책 말미에 조성기는 채택의 말을 인용함으로 저술 의도를 넌지시 밝히고 있다.
“蔡澤(채택)이 진나라 재상 范睢(범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鑑於水者 具面之容, 鑑於人者 知吉與凶(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 얼굴을 들여다볼 뿐이지만, 사람을 거울로 삼는자는 길흉의 여부를 알게 된다)”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 자는 똑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기로 작정한 사람이다. 역사와 다른 사람의 시행착오를 연구하는 것은 절대 시간 낭비가 아니다. 앞으로 투입해야할 시간과 에너지를 대폭 절약해주고, 쓸데없는 갈등을 줄여주는 놀라운 事前 Simulation이다.
그냥 머리 식힐 요량으로 읽을거면 조성기 소설을 읽으면 된다. 하지만 전국시대에 대해 좀 더 진지한 책읽기를 의도하는 사람이라면 임동석선생이 주를 달아 번역한 ‘전국책1,2’(전통문화연구회)를 읽어볼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전국책에서 내가 큰 깨달음을 얻었던 한 내용을 戰國策 鄒忌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鄒忌脩八尺有餘,而形体昳麗。朝服衣冠窺鏡,謂其妻曰:「我孰與城北徐公美?」其妻曰:「君美甚,徐公何能及君也!」城北徐公,齊國之美麗者也。忌不自信,而復問其妾曰:「吾孰與徐公美?」妾曰:「徐公何能及君也!」旦日客從外來,與坐談,問之客曰:「吾與徐公孰美?」客曰:「徐公不若君之美也!」明日,徐公來。孰視之,自以為不如;窺鏡而自視,又弗如遠甚。暮,寢而思之曰:「吾妻之美我者,私我也;妾之美我者,畏我也;客之美我者,欲有求於我也。」於是入朝見威王曰:「臣誠知不如徐公美,臣之妻私臣,臣之妾畏臣,臣之客欲有求於臣,皆以美於徐公。今齊地方千里,百二十城,宮婦左右,莫不私王;朝廷之臣,莫不畏王;四境之內,莫不有求於王。由此觀之,王之蔽甚矣!」王曰:「善。」乃下令:「群臣吏民,能面刺寡人之過者,受上賞;上書諫寡人者,受中賞;能謗議於市朝,聞寡人之耳者,受下賞。」令初下,群臣進諫,門庭若市。數月之後,時時而間進。期年之後,雖欲言,無可進者。燕、趙、韓、魏聞之,皆朝於齊。此所謂戰勝於朝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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鄒忌(추기)는 키가 8척(약185cm정도)이 넘고 용모가 수려한 남자였다. 하루는 朝服(조복:관원들이 조정에 들어갈 때 입는 옷)을 입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그의 처에게 물었다.
“나와 城北(성북:당시 齋의 수도인 臨뇌의 북쪽)의 徐公(서공:중국에서도 서씨가 잘생겼나보다...ㅍㅋ) 중 누가 더 미남이라고 보오?”
그의 처는 “당신을 서공이 어찌 따르겠습니까?”라고 대답하였다.
서공은 제나라에서 가장 잘 생긴 남자로 정평이 나 있었다.
추기는 믿기지 아니하여 다시 첩에게 물었다.
“나와 서공 중 누가 더 미남이라고 보는가?”
첩 역시 “서공이 어찌 당신을 따르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그 다음날 집에 손님이 와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추기는 또 손님에게 물었다.
“나와 서공 중 누가 더 미남이라고 보오?”
손님 역시 “서공은 대감만 못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다음날 마침 서공이 추기를 찾아왔다. 추기가 서공을 자세히 보니 아무래도 자기가 서공만 못한 것 같아서 다시 거울을 놓고 자기 모습을 살펴보니 서공과 자기는 차이가 너무 심하였다. 그리하여 밤에 자리에 누워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크게 깨달아지는 바가 있었다.
“처가 나를 더 미남이라고 한 것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요, 첩이 나를 더 미남이라고 말한 것은 나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손님이 나를 더 미남이라고 말한 것은 나에게 구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로구나...”
추기는 바로 조정에 들어 위왕을 알현하여 다음과 같이 풍자로써 諫(간)하였다.
“신은 실로 서공의 미모를 당할 수 없음에도 신의 처는 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또 신의 첩은 신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신의 손은 신에게 구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에, 모두 다 신이 서공보다 미남이라고들 했습니다. 생각하옵건대 지금 제나라는 사방 천리에 성이 120개나 됩니다. 대왕의 후궁이며 시녀며 측근자들은 모두 대왕께 친밀치 않음이 없고, 조정의 군신들은 대왕을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고, 제나라 사람들은 대왕에게 무엇인가 힘입음을 바라지 않은 자가 없습니다. 이로 본다면 대왕께서는 지금 총명을 가리우고 있음이 확연합니다.”
위왕이 추기의 말을 듣고 옳다고 생각하여 바로 명령을 내렸다.
“군신(群臣)․관리․백성 중에서 과인의 잘못을 면전에서 신랄하게 충간하는 자에게는 최상의 상을 줄 것이고, 서면에서 과인을 비평하는 자에게는 중등의 상을 줄 것이며, 길거리에서 과인을 비평하는 자에게는 하등의 상을 주리라.” 왕의 명령이 내리자 군신들이 잇달아 간언을 올리며, 문전에서 왕에게 진언하기 위하여 모여든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몇 달 뒤에는 점점 줄어들었고, 일년 뒤에는 정사가 바로 잡히어 왕에게 충고할 일이 없어졌다. 이웃나라들이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두려워하여 해마다 제나라에 조공을 바치게 되었으니, 조정에 앉아서 싸우지 않고 남을 복종시키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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