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2일 화요일

정문술, ‘아름다운 경영’, 키와채

정문술, ‘아름다운 경영’, 키와채
      
2003년 프레시안(pressian.com)이라는 인터넷 신문에서 정문술사장의 회고록이 연재되었다. 모니터로 그의 글을 읽는 도중에 몇 번이나 감동이 밀려오는 은혜(?)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듬해 한권 책으로 묶어 출간된 책이 바로 ‘아름다운 경영’이다.
정문술사장은 행정병으로 군복무 중에 육군본부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제대 후 중앙정보부에 스카웃 되어 18년을 공무원으로 살았다. 12.12 쿠테타로 중앙정보부가 보안사에 밀려 강제 퇴직조치를 당한 후, 부천에 금형공장을 인수해서 생고생을 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기업현장의 회한을 뼈저리게 온 몸으로 체험하면서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인 ‘미래산업’을 일궈내서 ‘벤처의 대부’로 통하는 인물이다. 현재는 은퇴해서 작년에 KAIST이사장으로 선임되어 봉사하고 있다.
 
정문술
      
정문술의 미래산업 경영에서 몇가지 주목할 만한 상식(!) 몇가지를 짚어 보자.

1.경영권을 종업원들에게 물려주고 은퇴
“자본주의 사회에서 私財를 물려준다는데 누가 뭐랄 것인가? 경영권이란 아비가 자식에서 물려줄 수 있는 부와 명예와 권력을 한꺼번에 갖춘 최고의 종합선물세트 아닌가? 하지만 그 ‘경영권’으로 관계사들의 자산까지 이러저리 돌려 사재로 만들고 상속까지 한다면 그건 정말 옳지 않다. 나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친인척과 회사를 철저히 ‘격리’시켜왔다. 리더가 측근 단속에 냉정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망가진다. 사실 나는 냉정하고 가혹하게 굴 자신이 없다. 그래서 우리 식구들이 회사근처에 얼씬도 못하도록 했던 것도 나의 한계를 누구보다 내가 잘 알기 때문이다. 자신 없기 때문에 원천봉쇄하는 셈이다. 은퇴를 기정사실화 하자 임원들은 극구 만류하더니 급기야 ‘명예회장’이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사장 직함이 나의 최종직위이고 평소에도 회장명칭을 쓰지도 않았는데 명예회장이 다 뭔가! 결국 ‘비상근 상담역’이라는 다소 기형적인 직함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정책결정에 끌어들이지 말것’과 ‘절대로 업무보고 하지 말 것’ 등 몇가지를 다짐받았다.”

2.필요한 인재는 키워서 쓴다.
미래산업의 R&D를 담당할 ‘미래연구센처’를 분당에 세우면서 연구원들이 구성되던 날 정문술 사장은 딱 세가지만 당부했다. “첫째, 목표는 언제나 여러분들 스스로 정하시오. 둘째, 연구비용은 절약하지 마시오. 셋째, 나한테 업무보고를 하는 사람은 해고하겠소.” 실제로 이들은 개발비용 367억원을 들여 3년 기간동안 SMD Mounter를 개발해 낸다.

3.사람은 배신을 당할지언정 끝까지 믿어주자.
“나는 아무리 회사가 어려운 지경에 처했을 때라도 섣불리 직원을 해고해 본적이 없다. 직원들의 능력이 늘 흡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또한 지금껏 거래해 온 은댕도 줄곧 하나다. 거래하는 증권회사도 변함없이 하나다. 특별히 조건이 좋은 거래처였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는 인연은 모든 것을 그 관계 안에서 풀고 해결하려는 막무가내의 '연고‘ 또는 ’인맥‘과 다르다. 내게 ’인연‘이란 관계에 대한 성실함이자 사람에 대한 예의다.” 정문술은 실제로 끝까지 믿었다가 엄청난 재산상의 손실을 받은 적도 있고 인간적인 배신감에 휘청거릴 때도 있었다. 그 많은 배신과 실패에도 “일단 사람을 거둔 후에는 절대로 의심하지 않고 모든 것을 맡긴다. 무조건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이런 나의 ’스타일‘을 의심부터 한다. 한참을 두고 봐도 내 스타일에 변함이 없는 듯하면, 이제는 이 만만한 스타일을 이용해 보고 반항도 해본다. 시험해 보는 것이다. 그래도 ’사람을 믿어주는 내 리더십스타일‘이 의연했을 때, 그들은 진짜 ’내 사람‘이 된다. 물론 이용하고 반항하는 단계에 고착되어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청난 손해를 본다.”

4.KAIST에 ‘생명과학과 정보기술 및 기계기술을 서로 융합하는 학과를 신설해 달라’는 조건을 걸고 일시불로 300억을 기증했다. “2003년 10월 KAIST에 정문술빌딩 준공식에 참석해달라는 초청장이 왔지만 나는 불참했다. 마땅히 돌려줄 것을 돌려 준 곳에 가서 축사하고 꽃다발까지 받을 이유가 내게는 없다.”
이 외에도 정문술사장의 인생에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1993년 부천에서 천안으로 공장을 옮길 때, 직원 137명 중 노부모와 절대로 떨어질 수 없다던 4대 독자를 제외하고 136명이 회사를 따라 천안으로 이사하는 것은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신뢰를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이런 에피소드들에 감동이 있다. 한국사회의 병폐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또 그 소신대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곽선희목사님 수업 중에 정문술사장을 언급하셨는데, ‘초신자였던 정문술사장이 설교를 그렇게 열심히 받아적더니 성경원리 그대로 경영을 했다고 하더만’...ㅎㅎ 꾼들이 득실거리는 비즈니스업계에 청지기의식을 가지고 순전하게 사업하여 일가를 이룬 사람의 회고록은 언제나 감동뿐만 아니라 영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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