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4일 월요일

서현,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효형출판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달을 처다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면 답답해진다. 건축(architecture)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자꾸 건물(building)에 대해서만 물어오면 대화를 그만두고 싶다. 건축은 단순히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그 건물이 설계되고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포함한 인문학의 총체다. 인간과 인간이 살아가는 주거공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건축을 이해할 수 있다. 한양대 건축과 서현교수가 쓴 이 책은 건축에 대한 아주 친절한 기초 입문서라 할만하다. 그것도 건축에 대한 문외한이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요긴한 입문서다.       
저자는 먼저 점-선-벽면-방-건물-동네-도시설계-국토배치 순서로 공간분할을 이해해야 건축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건축 구조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壓縮力, 引張力, Bending Moment, Buckling의 개념을 친절하게 설명해준 부분과 책 말미에 기둥과 보, 공조와 기계실, 공기를 운송하는 길인 duct, 창(window)와 Spandrel 등을 설명한 부분은 큰 도움이 되었다.
서현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건물 사진과 함께 건축의 구조와 재료, 설계, 공간배치 등을 자세하게 설명하는데 그 건물의 설계자를 밝히지 않고 있었다. 일부러 ‘건축가/설계자’라는 주어를 쓰며 실명을 거론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궁금했다. 아니다 다를까 250쪽에서 의도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는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이름은 거의 거론되지 않는다.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서 방향을 제시하고 관계되는 모든 사람들과 문제점들을 지휘하고 해결하는 것은 한 사람의 건축가다. 그는 결과물에 최종 책임을 지면서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는다. 그만큼 건축가의 능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회화나 조각과 달리, 건물이 지어져서 제대로 된 작품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건축가 한 사람의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하실의 주차장 구획부터 옥상의 방수 방법까지를 한 사람이 모두 지정할 수는 없다. 건물이 만들어지는 수많은 선들을 다 보기 좋게 만추는 일만해도 엄청난 양이다. 우선 건축가라고 하여도 설계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면서 온갖 도면을 그려내는 병아리 건축가들의 힘이 필요하다. 좋은 건물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한 이들의 결집된 힘으로 좋은 설계가 태어난다. 여기에 구조, 설비 엔지니어들 그리고 실제로 현장에서 건물을 짓는 시공업자 등의 끈기도 필요하다. 건축가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건축주의 해안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훌륭한 건물로 갈채를 받는다면 모두를 함께 무대에 세워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가의 이름은 되도록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종 책임을 지는 이로서 건축가는 중요하다. 그래서 그 이름은 이 책의 맨 뒤에 모아서 밝힐 것이다.”
서현교수의 이런 태도 아주 맘에 든다. 건물은 설계자 한사람에 의해서 완성되지 않는다. 수많은 손길과 고민, 조언, 현장 근로자들이 힘을 합쳐서 지어진다. 저자는 이걸 상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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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다가 줄친 부분 몇부분 발췌해 본다.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사람의 키를 프랑스인 기준으로도 큰 183cm로 잡고 여기 황금분할을 곱하고 나누어가면서 모뒬로르(modulor)라고 이름 붙인 독특한 치수 체계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이 척도를 문이나 계단부터 방의 크기와 심지어 건물의 크기를 결정해 나가는데가지, 그것도 평생 사용해 나간 드문 고집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꼭 황금분할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나 적어도 그가 만든 건물들은 현대 건축의 기념비들로 알려져있다.” p.59.
"땅을 파면 한꺼번에 바닥과 벽이 생긴다. 따라서 단을 높여서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한정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다. 도심의 대형건물들 주위에는 이처럼 땅을 파서 만든 공간, 즉 건축가들이 Sunken garden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이 공간은 적어도 자동차들이 점거하고 있는 街路와는 구분된다는 점에서 도시의 오아시스로 여겨질 만한 잠재력이 풍부한 곳들이다. 선큰가든은 화재라도 나면 계단보다 훨씬 쉽게 탈출할 수 있는 통로도 된다. 그리고 이를 적극적으로 설계하면 어둡게만 여겨질 지하공간을 또다른 지상층처럼 만들 수 있기도 하다.“ ex)지하철 삼성역에서 코엑스몰도 들어가는 입구 pp.88-89.
"북향에서 받는 빛의 양은 남향만큼 많지 않다. 그러나 실내로 들어오는 빛이 항상 散亂光이고 그 양도 거의 일정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다 보니 일정하고 풍부한 산란광이 필요한 미술관은 창이 대개 북쪽을 향하고 있다. 이 점은 공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공장의 상징처럼 알고 있는 지붕의 톱날모양 창들은 모두 그 유리 면이 북쪽을 향해 있는 것이다. 사무용 건물에서는 겨울철 난방보다 여름철 냉방에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따라서 직사광선이 실내 유입이 적극적으로 차단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북향이 선호되기도 한다. 상점의 경우에는 진열장에 들이 비치는 직사광선은 제품의 보존에 그다지 좋을 것이 없다. 거리의 남쪽에 자리잡고 북향을 한 상점을 더 선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104.
“건물에 간판이 매달리기 시작하면 건물과 간판, 간판과 간판 사이에 평화적 공존과 적대적 공존의 선택이 요구된다.” p.225.
"학교는 통제와 훈육의 공간이고 그러다 보니 학교는 건축양식이라는 점에서 병영과 상당 부분이 유사하다.“ p.229.
"카라얀이 지휘했던 베를린 필하모닉 음악당은 Hans Scharoun(1893-1972)이 설계했다. 한스 샤로운은 베를린 시민의 세금으로 짓는 음악당이니 때문에 군주에 의해 지은 음악당과는 당연히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군주를 위해 마련되었던 음악당 한가운데의 바로 그 자리가 갖는 의마가 이제 사라졌음을 그는 주목하였다. 그래서 음악당에서 좌석을 죄 흩뜨려서 배치하고 무대를 음악당의 한가운데에 집어넣었다. 좌석들 사이의 위계와 갈등은 그만큼 희석되었다.“ p.233.
"건축가와 조각가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조각가들은 자기 돈으로 조각을 만들지만 자기 돈으로 건물을 만들 수 있는 건축가는 거의 없다.“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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