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4일 월요일

Naoki Urasawa, 몬스터

80년대 초중반 만화라고는 로봇 찌빠, 길창덕의 꺼벙이, 강가딘... 좀 새련된 로보트 태권브이 뭐 그런게 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국민학교 졸업할 즈음에 이현세(국경의 갈까마귀, 공포의 외인구단)와 박봉성(신의 아들)이라는 두사람이 열어제친 한국 장편만화의 매력에 푹~ 빠져들기 시작했다. 머리 속으로 상상하는 모든 내용을 영화 스크린으로 옮기기에는 당시 한국영화계의 기술력과 자본력은 턱없이 부족한 시대였다. 그러나 만화는 종이와 펜만 있으면 무한 상상의 세계를 표현가능하게 하는 수단이었다. 만화는 상상력만 있으면 기술력과 자본력은 필요없는 매체이다. 중학교 들어가면서 부터는 동네 2프로 동시상영 영화관에 토요일이면 들락거리면서 영화를 엄청 봐대기 시작했다. 내게 영화는 세계를 읽어내는 창이었다. 물론 미국 영화가 거의 대부분이었지만 간간히 불법으로 소개되는 일본영화와 마침 전성기를 구가하던 홍콩영화(성룡, 주윤발 등장 영화)에 열광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내 추억 속엔 만화에 대한 애뜻함이 있었다. 90년대 초반 대학시절 일본문화 개방과 동시에 밀려들어오기 시작한 망가(일본만화)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공작왕, 드래곤볼, 슬램덩크 등 청소년 용이 아닌 성인용 일본만화는 그 스토리과 구성의 짜임새와 스케일은 상상초월이었다.

Naoki Urasawa       
그 중, 대학원 다닐 때, 만화방에서 아주 재밌게 본 만화를 한편 소개하고자 한다.
나오키 우라사와가 쓴 '몬스터‘라는 작품이다. 일본인 뇌전문의사 덴마가 독일에 유학을 가서 그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시대는 동구 공산권이 무너지는 전후를 배경으로 해서 체코슬로바키아, 동서독을 중심으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시행된 인간실험(정신개조)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풀어쓴 역작이다. 서구를 따라잡을 수 없는 몰락해가는 동구 공산권의 극우파들은 히틀러같은 '괴물' 절대악을 만들어내는 것이 서구 자본주의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라 판단하고 이를 위한 실험을 실시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그 결과 인간들의 본성을 철저히 이용할 줄 아는 한 인간이 만들어지는데... 섬뜩하면서도 묘한 매력을 지닌 요한...
인간의 본성, 선악의 혼돈, 파괴된 인간성에서 꽃피는 연민, 사랑, 지우고 싶은 과거, 회한, 되풀이할 수 없는 복수, 인간의 무기화, 정치경제, 국제정세...
만화가도 이 정도로 그리고 쓸 수 있다면 문학가의 반열에 올릴만 하다. 붓터치와 그림도 가히 작품이라 할만하다. 주변정황 묘사, 인물의 표정 캐취도 일품이다. 한국 만화는 스토리에 치중하느라 배경이나 상황묘사를 단순하게 처리해버린다. 그래서 마치 그냥 가짜 스튜디오 세트에서 찍은 영화처럼 느껴지는 반면에, 일본 만화는 몬스터처럼 유럽이 배경이면 실제로 건물이나 길 등이 실제 유럽 풍의 장면을 그래도 그려내고 있다. 마치 세트장이 아닌 야외현장 촬영한 느낌이다. 이런 꼼꼼한 배경처리는 만화 작가가 유럽을 실제로 탐방해서 사진찍고 자료를 모아 연구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붓터치다. 그런게 바로 '장인정신'이 아닐까?
 
총18권으로 세주문화에서 출판되었다. 아무튼 만화는 더 이상 코흘리개 애들이나 보는 심심풀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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