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4일 월요일

Ephraim Kishon,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디자인하우스

과천 현대 국립미술관에 갔을 때다. 내 머리 속에는 너무나 불경스런 생각들이 끓어올랐다.
“이거 예술 작품 맞아? 쓰레기 아냐? 그냥 몇개 휘갈겨놓고 예술 작품이라고 우기는거 같은데... 저 드럼통은 뭐야? 저거도 예술작품이야? 너무 성의없이 만든거 같은데...”
다들 너무나 진지하게 감상 하고 있고, 또 진지하게 설명하는 미술관 직원 앞에서 내 무식의 소치가 탄로날까봐 조심하며 불경스런 생각을 없애느라 혼난 적이 있다.
그러다 우연히 책을 통해 한 예술 평론가를 만났다. Ephraim Kishon이 그다. 유태인으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유럽에서 활약한 인물이다. 말년은 이스라엘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 자신이 실제 미술작가이자 또한 비평가였다.
Ephraim Kishon,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디자인하우스      
먼저 키숀의 책에서 발견한 웃기지도 않는 현대 예술작품과 공연 5가지만 소개해보자.
 
 
1. Brillo Boxes(Andy Warhol)
위 작품은 Brillo Boxes(브릴로 상자들)라는 작품이다. Brillo는 미국 주방용 세제/수세미 만드는 회사다. 튀기 좋아하는 한 예술 천재(?)가 약국에서 손수 박스 체로 구입해서 몇개를 쌓아놓고는 예술 작품이라고 전시를 했다. 이게 예술작품이냐 아니냐는 논쟁이 불거지기도 전에 사람들은 뛰어난 작품이라고 열광했다. 그 천재가 Pop art의 선구자 Andy Warhol이다.
 
2. 그림들 사이의 공간
Bernhard Hӧke(베른하르트 회케)라는 미국 작가는 ‘전시품 38, 프랑크푸르트 예술가 35인 展’에 ‘그림들 사이의 공간’이라는 제목으로 작품을 출시했는데 실제로 액자 안에는 아무런 그림도 없었다. 말 그대로 그림들 사이에 빈공간인 셈이다. 사람들은 이 작품을 감상하느라 진지하게 화폭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 작품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은 없었다.
      
3. 런던에서 있었던 Tomas Blod의 파아노 연주회
100여명의 음악 애호가들이 주말에 런던 콘서틀홀에 모였다. 무대에 오른 토마스 블로드는 열정적인 제스처로 건반을 두드리는 행동을 취했다. 그러나 실제로 건반을 치진 않았다. 그런 식으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피아노 앞에 앉아 열심히 연주를 했다. 45분 동안이나 계속된 無音의 콘서트가 끝나자 청중들은 열렬히 박수갈채를 보냈다. ‘귀를 통한 음악이 아니라 눈을 통한 음악’이 그날 연주회의 副題였다. 그러나...
그 다음날 TV방송 관계자들이 꾸민 몰래카메라였음이 밝혀졌다. 몰래카메라의 기획의도는 이랬다. “만약 지적인 속물 근성에만 호소할 경우 관객들에거서 뭘 기대할 수 있을지 또 어느 정도 그들을 속일 수 있을지 한번 알아보기 위해 기획했다.” 콘서트 실황이 방송을 타자.. 사람들은 뒤집어졌다.
      
4. 제3세계에서 온 젊은 미개인
1994년 ‘몰래카메라’에서 기분 좋아 보이는 두마리 침팬지가 물감으로 뭔가를 마구 그리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서 사람들은 이 재능있는 침팬지 두 마리의 예술 작품을 함부르크의 부자 동네인 한자 지역에서 열린 <제3세계에서 온 젊은 미개인>展이라는 전시회에 출품했다. 높은 수준의 교양을 갖춘 관람객들은 그저 덕지덕지 칠해 놓은 그림들을 앞에 놓고 뭔가를 이해한 듯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감상했다. 거기에 참석한 예술 전문가들 또한 최대의 찬사를 사용하면서 이 기발한 예술 작품들을 칭찬하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Die Zeit'紙의 유명한 예술 비평가는 ’아프리카에서 온 예술가들‘의 비상한 재능에 대해 축하하면서, “유럽 화가, 특히 Malewitsch와 Miró의 영향을 부인할 수 없지만 나는 만족과 존경심을 가지고 이 그림들을 감상했다”라고 썼다.
 
5. 쾰른에서 열린 오페라공연
백여명으로 이루어진 남여 합창 단원이 무대 위에 나와 반원을 그리면서 질서정연하게 줄을 섰다. 그리고 지휘자가 지휘를 하는 15분간 내내 아무런 노래도 부르지 않았다. 이 현대적 합창 단원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고, 그 침묵의 콘서트가 끝나자 엄숙한 표정으로 퇴장했다. 그리고 진보적인 관객들로부터는 열렬한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모더니즘 화가 Kurt Schwitters의 발언을 들어보자. “나는 예술가이다. 그러므로 내가 침을 뱉기만 해도 그것은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쯤가면 뭐 막~가자는 것이다. 요셉 보이스를 비롯한 현대 예술가들의 쓰레기 같은 작품을 향해 ‘저건 쓰레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무언의 공연을 보고 ‘저건 사기야’라고 비평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황당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거의 없다’가 정답이다. 롤프 로이칭어는 이렇게 개탄한다. “오늘날의 엉터리 예술에 대해 누군가가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한다면, 이른바 예술 마피아들이 마치 하이에나처럼 그에게 덤벼든다는 것을 나는 몸소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베른트 M. 마더는 “현대 예술작품이라 불리는 많은 것들은 쓰레기 더미 위에 진열해야 할 것이다. 너무나 유치한 장난이 오늘날 획기적인 예술 작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 쓰레기를 향해 얼마나 자극적인 비평이 수여되며, 그런 그림과 조각이 얼마나 큰 명성을 얻게 되는지... 도저히 믿기지 않을정도다.”       
실제로 쓰레기를 향한 예술 마피아의 비평을 비교해보자.
예술비평 : 자기 도취적으로 끓어오르는 힘의 유희가 만들어 낸 팽창하는 부드러운 구조
실제작품 : 왼쪽 모서리에 있는 갈색의 얼룩
예술비평 : 리듬을 넣은 선의 아폴로적 완성
실제작품 : 두개의 테두리 줄
예술비평 : 시대를 초월한 변용으로 인해 우주적으로 상승하는 세포
실제작품 : 無(무)
예술비평 : 멜로디의 과잉에 대한 시각적 거리로서 스케치된 흔들리는 진테제
실제작품 : 뒷면에 작가의 사인이 있는 텅 빈 캔버스
예술비평 : 원형적인 秘義(비의)와 키메라적인 비의의 나선적이고 유동적인 대립
실제작품 : 다섯 개의 녹색 사각형
예술비평 : 태아에 근접하는 파괴 계수의 폭발을 예고하는
기하하적이고 몽유병자적인 의식의 형태
실제작품 : 부풀어 오른 콘돔
책을 읽는 내내 속이 다 시원했다. 임금님이 투명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벌거벗은 상태라는 진리를 발설한 꼬마 아이를 만난 기분이다. 예술은 범부의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누구나 보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기 만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다. 문제는 그걸 이용해서 뭔가 있는 척~ 하는 놈들때문에 일이 자꾸 꼬인다.
4번에 침팬지가 그린 그림과 Jackson Pollock의 Number 8이 뭐가 다른단 말인가?
 
 

Jackson Pollock의 Number 8.
 
 
잭슨 폴록의 작업광경, 아이스하키 스틱을 들고 스케이트를 신고.. 통에서 페인트를 찍어 흩뿌리고 있다. 
 
 
 
 왼쪽의 Hans Hartung은 분필로 아무생각없이 호작질을 해놓구선 버젓이 작품이라고 전시를 한다. 더 어이없는 것이 이런 쓰레기가 굉장한 고가로 팔린다는 것이다.
 
 
Theo van Doesburg는 캔버스에 네모난 색칠을 하는 화가로 유명하다. 이것도 무쟈게 비싸게 팔려나가고 또 위대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책 말미에 기록된 에프라임 키숀의 자조썩인 넋두리를 들어보자. “진정한 화가들은 우리들의 건전한 사고능력을 냉소하거나 무시하지 않으면서 감정에 호소한다. 자신의 작품이나 자신의 예술을 감상하는 관객에 대한 사랑없이 진정한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을 위하는 배려나 애정이 빠지게 되면 이기주의나 오만, 허영심, 아니면 효과만을 노리는 마음만이 중요하게 된다. 예술은 관객이 작품을 접근할 수 있고, 인간의 영혼과 정신에 호소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가능할 수 있다. 예술은 그림을 보는 관객에 의해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다. 현대 예술이 저지르고 있는 최대의 죄악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관객을 무시하거나 심지어 경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 예술 비평가 Giovanni Papini著書, 「Libro Nero」에 실린 '피카소의 遺言'>  "예술이 더 이상 진정한 예술가들의 자양분이 될 수 없었던 때부터, 예술가들은 자신의 재능을 자신들의 환상이 만들어 내는 온갖 변화와 기분을 위해 사용했다. 지적 야바위꾼들에게는 온갖 가능성이 열려 있었으니까. 대중들은 예술 속에서 더 이상 위안도, 즐거움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세련된 사람들, 부자들, 무위도식자, 인기를 쫓는 사람들은 예술 속에서 기발함과 독창성, 과장과 충격을 추구했다. 나는 내게 떠오른 수많은 익살과 기지로 비평가들을 만족시켰다. 그들이 나의 익살과 기지에 경탄을 보내면 보낼수록 그들은 점점 더 나의 익살과 기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오늘날 명성뿐 만아니라 부(富)도 회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홀로 있을 때면 나는 나 스스로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위대한 화가는 조토와 티치안, 렘브란트와 고야 같은 화가들이다. 나는 단지 나의 시대를 이해하고 동시대의 사람들이 지닌 허영과 어리석음, 욕망으로부터 모든 것을 끄집어낸 한낱 어릿광대일 뿐이다." - Pablo Picasso -
      
키숀은 피카소의 유언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기만적인 현대 미술과 농락당하는 관객에 대한 거침없는 비평’이라는 부제를 단 책을 출간하면서 책 제목으로 ‘Picassos süße Rache'(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라고 붙였다. 앞으론 예술작품을 감상함에 있어서, 이십여 페이지가 넘는 팜플렛을 꼼꼼히 읽고 감탄하며 캘러리를 돌아보는 짓은 하지 않겠다. 내 무식이 탄로나는 한이 있더라도 내 방식대로 작품을 이해하며 미술애호가는 아니지만 凡夫의 한사람으로서 그냥 예술을 즐길 것이다. 이런 작심을 하게 되는데 나는 키숀에게 빚을 지고 있다. 블로그에 이 글을 쓰다가 키숀의 홈페이지( www.kishon.info )를 찾아보았다. 어라.... 2005년 1월 29일에 사망했다. 2001년엔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올랐다네.... 故人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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