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4일 월요일

다케히코 이노우에(井上雄彦), 배가본드, 학산문화사

다케히코 이노우에(井上雄彦), 배가본드, 학산문화사

다케히코 이노우에(井上雄彦)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 그는 단체 조직도, 시류에 영합도, 정치와는 전혀 상관없는 오로지 검이라는 수단으로 자신만의 세계에서 도를 닦아온 검객이다. 다케히코 이노우에 ‘Vagabond’는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의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를 원작으로 삼고 그린 만화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쓴 ‘오륜서’도 죽고 죽이는 실전에서 필요한 몇몇 내용을 제외하고 나면 검도교본이 아니라 자기도야와 세상 이치에 대한 철학서적처럼 보인다. 다케히코 이노우에... 이 양반 그 유명한 슬램덩크를 그린 만화가인데, 배가본드를 통해서 일본 젊은이들에게 무사도와 함께, 풍요속에 띠룩띠룩 방만해진 일본의 정신상태에 처절한 실전정신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싶었나보다. 소설과 만화는 실제 역사가 아니다. (물론 기록된 역사도 실제 사실이 아닌 경우도 많다) 그러나 배가본드가 각색을 한 소설이라 할지라도 검을 통해 득도해 가는 미야모토 무사시의 여정은 현대인들에게 여러 가지 화두를 던져준다. 잔인하게 사람을 칼로 베는 것도 미학으로 승화시키는 일본의 문화적 풍성함(?)이 대단하다. 내가 보기엔 서부 보안관이 쌍권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미국식 미학도 같은 부류기는 하지만서도.... 이런 군국주의, 제국주의가 현대에는 무자비한 폭격으로 승화(?) 된 것일까? CNN으로 보는 전쟁장면을 즐기는 모습이 250년 전 일본에서는 보는 칼싸움와 겹쳐지는 건 왜일까?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시라소니, 김두한의 낭만 주먹이 멋으로 보이고, 나중에는 집단 난투극과 조폭의 칼부림이 의리로 보인다. 물론 정치판의 숙청과 군사 쿠테타가 더 지저분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왜 이런 폭력이 미학으로 탈바꿈하여 시대정신으로 면면히 이어져오는 것을까? 나는 '할수만 있다면 전쟁은 피해야한다'는 반전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왜 나도 배가본드를 보면서 ‘우와~ 멋있다~’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일까? 인간의 파괴본능과 살인충동은 타락한 본성의 발로일까?

이에반해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는 왜 그리도 무기력하게 대응하다 결국 죽어버린 것일까? 그것도 모자라 그를 추종하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자기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남을 위해 죽는 것’을 제자도라고 가르치니.... 폭력미학에 중독된 현대인들이 이런 매력없는 복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나.. 그러니 2000년 예수 당시 유대인들도 ‘그 무기력한 메시야’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결국 십자가에 죽여버린 것이 아닌가?
원수갚는 보복의 악순환이 정의 실현이요 명예로 인식되는 현 시대에 사탄의 보복의 원리를 끊어버리고 용서와 화해의 죽음을 통한 구원을 몸소 보여준 예수... 그는 진정 따르기 힘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를 따라 나서긴 했는데.. 과연 이 제자도가 나한테도 가능하기는 한걸까?
푸훗~ 배가본드 30권까지 나왔다. 다음권에서 코지로와의 대결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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