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을 한번 돌이켜보자.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국어과목은 현대문학과 고전문학으로 나뉘어있었다. 고전문학(통칭 고문)은 훈민정음 언해(나랏 말쌈이 뒹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맏디...), 용비어천가(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등등을 배웠는데, 그 때 이런 걸 들어본 적도 있을 것이다. 杜詩諺解(두시언해)! 唐나라 시인 杜甫의 시를 세종 때 우리말로 번역하기 시작해서 성종 때 25권으로 출간한 책이 두시언해이다. 두보의 시를 언문(한글)을 해제(번역)했다는 뜻이다. 두시언해는 두보의 시를 조선에 소개한 것도 있지만 번역해서 기록된 언문이 초간본과 중간본에 차이가 있어 한글 음분 변천의 중요한 연구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왜 조선조에 두보의 시가 당시 선비들에게 널리 읽힌 것일까?
두보는 기원전 7세기 하남 공현 사람이다. 중국 고전시가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 냉철한 사실주의자이다. 두보는 원래 忠君愛民의 정치사상과 참여정신이 높았다. 그러나 과거에 응시해서 여러번 낙방한 탓에 말년에는 가난한 유랑생활을 했다. 이태백이 도가적 낭만 시인이라면, 두보는 유가사상에 바탕을 둔 仁愛를 강조한 시인이자, 민초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여 시를 쓴 사실주의 시인이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두보의 시는 안록산의 난 등 당시 시대상황이 반영되어 뭔가 좀 침울하고 아스라한 분위기가 녹아있다. 유교이념의 바탕 위세 세워진 조선조는 유가사상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두보의 시가 읽혀지도록 국가차원에서 번역 배포 권장했던 것이다.
두보초당 내 난간에 걸터앉아 차한잔 하면서 책보는 어르신... 전형적인 중국 분위기라 찍어봤다.
2008년 여름 글로리아 크로마하프팀과 쓰촨 청뚜(成都) 두보초당 들렸다가 차한잔
두보초당 초입에 있는 두보 청동상
成都 杜甫草堂에 가보면 두보의 삶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정우성 나오는 '호우시절' 배경이 된 장소이기도 한데, 여주인공이 관광안내원 역할이라 두보초당이 상당히 자세히 촬영되어 있다. ‘소설 두보’는 1937년 서울서 태어나 41년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이주한 김수영 선생이 중국에 출판된 두보 전기를 참조하여 評譯한 책이다. 중국에서 한국어 선생을 한 경력 때문인지 요약과 번역이 깔끔하다. 두보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전기 소설로 읽을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어 소개한다. 나는 이 책을 92년 3월 입대를 앞두고 집에 내려가 영남대 도서관에서 읽었네...ㅎ 책 앞 첫장 백지에 책 읽은 날짜와 소감을 간단하게 써넣는 버릇이 있어서..
두보가 늘그막이 식솔들을 데리고 이러저리 떠돌다가 형주에 있는 친구한테 도움을 얻고자 배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동정호 옆 악양루에 올라 착찹한 심정을 시로 읊조린다. 이 시대가 두보의 대표적인 시 ‘등악양루’다. 김수영 선생 번역으로 소개한다.
두보가 늘그막이 식솔들을 데리고 이러저리 떠돌다가 형주에 있는 친구한테 도움을 얻고자 배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동정호 옆 악양루에 올라 착찹한 심정을 시로 읊조린다. 이 시대가 두보의 대표적인 시 ‘등악양루’다. 김수영 선생 번역으로 소개한다.
<登岳陽樓>등악양루
昔聞洞庭水 석문동정수 今上岳陽樓 금상악양루
吳楚東南折 오초동남절 乾坤日夜浮 건곤일야부
親朋無一字 친붕무일자 老去有孤舟 노거유고주
戎馬關山北 융마관산북 憑軒涕泗流 빙헌체사류
어려서 동정호 말만 듣다가, 이제야 악양루에 올라섰노라
오초(吳楚)땅은 동남으로 펼쳐져 있고, 밤낮 없이 물 위에는 천지가 떠 있는 듯
그리운 벗 편지 한 장 보내지 않고, 늙고 병든 몸엔 쪽배 하나 뿐일세
북쪽 고향 땅에 적들이 짓밟으니, 난간에 기대여 눈물 뿌리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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