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4일 월요일

유재원, 「그리스 신화의 세계: 올림포스의 신들/영웅이야기」현대문학

유재원, 「그리스 신화의 세계: 올림포스의 신들/영웅이야기」현대문학
      
서양 고전을 읽다보면 그리스신화와 관련된 스토리나 지명, 단어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어릴 때 얄팍한 문고판으로 그리스신화를 대충 훑어본 적이 있다. 그 지식으로 이 때까지 버텼다. 그런데 이 얄팍한 지식이 고전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이미 너무 큰 방해물이 되어있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그리스신화를 한두달만에 정리하고 넘어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스신화 연구로 유명한 故이윤기선생의 책에서 외대 유재원교수가 쓴 그리스 신화를 호평한 내용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확인해 보니 ‘현대문학’에 연재된 글들을 2권의 단행본으로 출간한게 있었다. 이윤기선생이 이 책을 이렇게 평했다. “우리가 유재원교수를 보유하게 되었다는 것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관한 한 더 이상 토마스 벌핀치 따위의 신세를 지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건 굉장한 호평이다. 그리스 신화를 외국 번역서가 아니라 우리 시각으로 재해석해서 쓴 의미있는 책이라는 평가다. 이윤기선생의 추천으로 유재원교수가 쓴 그리스 신화:1.올림포스 신들, 2.영웅이야기 두권을 읽었다. 오호라.. 놀라웠다. 깔끔하게 잘 요약된 그리스 신화였다. 단 두권을 읽었을 뿐인데 제대로 공부한 느낌이 들었다. 애들 읽기 좋게 스토리 위주로 소설처럼 쓴 책이 아니었다. 지역별로 서술된 그리스 신화를 연대기, 즉 시간의 순서대로 정리해 놓았다. 신과 인간, 사건 뿐만 아니라 그 사건이 가지는 의미, 게다가 현대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그리스 신화를 재해석하는 내용들도 있다. 신화를 설명하고 있지만 인문, 고전, 역사, 언어학, 인류학, 심리, 고고학적 발굴 등을 같이 설명하고 있어 깊이가 있다. 역사적 격동기를 지나면서 내용이 얼키고 설켜 뒤틀려버린 그리스 신화를 시대별로 재정리하는 건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빠삭한 연구가 선행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한 작업이다. 그리스어에 능통한 언어학자답게 어원분석과 사조의 흐름도 꿰고 있다. 영어 실력만 믿고 문화에 대한 이해없이 그리스 신화를 번역해놓은 책들과는 급이 다르다. 단 두권으로 그리스 신화를 끝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추천할만한 책이다.
저자 유재원 교수는 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할 즈음 그리스 외무부에서 보낸 장학생 선발 공문을 보고 지원해서 선발되었다. 언어학을 공부하러 가는 그리스 신화에 푹 빠진 유재원에게 은사 한분이 내심 불안했던지 “자네, 그리스에 가서 언어학 대신 신화학으로 전공을 바꾸면 안되네”라고 타일렀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리스에서 유학하는 동안 틈나는대로 그리스,터키,이집트 등 신화 관련지역을 꼼꼼히 답사하고 신화 관련 서적들을 원어로 독파하기 시작했다. 귀국해서는 현재 한양대, 한국외대에서 언어학과 신화학을 가르치고 있다. 프레시안 인문학습원에서 ‘그리스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내용을 살펴보자. 1권에서는 창조신화와 신들의 전쟁, 인간의 탄생 설화, 대홍수와 시대구분이 설명되어 있다. 거기다 올림포스 열두신과 그 외 몇 신들(제우스, 헤스티아, 헤라, 데메테르,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아테나, 아폴론, 헤르메스, 아레스, 헤파이스토스, 디오뉘소스, 포세이돈, 하데스)을 각 신의 탄생과 사건, 역사적 의미를 神별로 나눠서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연애 행각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실로 제우스의 여성관계는 어지러울 정도로 많아 그 이야기를 모두 들춰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제우스가 이렇게 많은 바람을 피우게 된 것은 실은 자신의 뜻이 아니었다. 제우스의 정력 넘친 애정행각에서 우리는 제우스 신앙이 확산되어 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올림포스 신앙이 그리스 땅에 들어오기 훨씬 이전에 각 지방에서 숭배되던 신들이 제우스 신앙에 흡수되는 과정에서 여신들은 그의 연인으로 각색되었고 남신들은 그의 아들로 취급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 뿐만 아니다. 그리스인들은 혈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므로 모든 부족은 자신들의 혈통을 主神인 제우스와 관련시키고 싶어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전설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제우스는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천하의 난봉꾼이 되어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난잡한 여자관계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제우스의 바람피우기는 후세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에게 비윤리적이라고 호된 비판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제우스의 사랑이야기를 꾸며 낸 사람들은 후세에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윤리성에 상처를 입은 제우스 신앙은 유럽에 기독교 복음이 전해지면서 완벽한 윤리로 무장한 유일신 신앙에게 자리를 내주게 된다.”pp.121-122.
       
2권에서는 공간적으로 배열된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신이 아니라 사람, 물론 신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인물들도 많다)을 시간적으로 다시 배열해서 설명하고 있다. 페르세우스, 시쉬포스와 벨레로폰, 테바이를 건설한 카드모스, 크레타의 미노스, 테세우스, 트라케의 오르페우스, 아이톨리아의 멜레아그로스, 아르카디아의 여걸 아탈란테, 테살리아의 의술 영웅 아스크레피오스, 그 외 여러 영웅들을 재미와 더불이 심도 깊에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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