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창작과비평사
詩集 치고는 타이틀이 굉장히 도발적이다. '사랑하다 죽어버려라'...
정호승 시인은 50년생 대구사람이다. 경희대 국문과 출신인데,
인상에서부터 시인 분위기기 물씬 풍긴다.
우리 세대가 20대일 때, 이 책을 선물하면서 사랑고백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안하다>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추억이 없다>
나무에게는 무덤이 없다
바람에게는 무덤이 없다
깨꽃이 지고 메밀꽃이 져도
꽃들에게는 무덤이 없다
나에게는 추억이 없다
추억으로 걸어가던 들판이 없다
첫눈 오던 날 첫 키스를 나누던
그 집 앞 골목길도 사라지고 없다
추억이 없으면 무덤도 없다
추억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
꽃샘바람 부는 이 봄 날에
꽃으로 피어나던 사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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