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7일 목요일

홍세화,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창작과비평사

홍세화,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창작과비평사

이 책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후속 편이다. 홍세화선생이 프랑스와 유럽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으나 실상은 프랑스와 유럽 문화를 빗대서 한국사회를 비평하고 있다. 그의 관심은 사실 프랑스가 아니라 자신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막고 있는 한국이다. 그 답답한 심정을 안고 관용과 포용의 정신을 다시 강조하며 쓴 책이다. 1996년 입국금지가 풀려 고국을 방문했고, 2002년엔 23년의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영구 귀국했다. 현재는 ‘르 몽드 디플로마띠끄’와 한겨레신문에 글을 기재하고 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전혀 인식도 되지 않던 사안들이 외국에 나가서 다양한 시각과 문화를 접하다보면 한국 사회가 새롭게 인식된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그냥 받아들였던 가치관과 사고방식들이 전부 재해석된다. 나 역시 미국 와서 1년 반 밖에 살지 않았는데 벌써 몇가지 고정관념은 깨졌다. 홍세화 선생의 두 번째 책을 읽는 내내 고정관념 비틀어보기 훈련을 하는 것 같았다. 신선한 시각과 자극은 언제나 즐겁다. 이 책 내용 중에 소개하고픈 두가지 내용만 직접인용한다.

1. “그도 프랑스야, 내비둬...” (한국 같으면 벌써 죽였을텐데...)
알제리 독립전쟁이 시작된 1957년은 알베르 까뮈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해였다. 까뮈는 “조국을 배반할 수는 있으나 자신을 길러준 어머니를 배반할 수는 없다”는 논리를 펴면서 식민지에도 반대하지만 알제리에서 프랑스인들이 쫓겨나는 것에도 반대한다는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까뮈는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이다. 까뮈가 인간관계와 명분 사이에서 주저했다면 사르트르는 단호했다. 사르트르는 말과 글로 식민지의 반인간성, 반역사성을 강력하게 외쳤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알제리 독립자금 전달책으로까지 나섰다. 당시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이 프랑스에 살고 있는 알제리인들이 각출한 독립지원금이 들어있는 돈가방의 전달 책임자로 자원했던 것이다. 프랑스 경찰의 감시를 피해서 그의 책임 아래 국외로 빼돌린 자금은 알제리인들의 무기 구입에 필요한 돈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그의 행위는 문자 그대로 반역행위였다. 당연히 사르트르는 법적으로 제재해야 한다는 소리가 드골 측근들의 입에서도 나왔다. 이에 대해 드골은 이렇게 간단하게 대꾸했다.
“그냥 놔두게, 그도 프랑스야!”
‘그도 프랑스야!’ 이 한마디에 우리는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두 사람을 만나고 또 그 두사람이 가장 프랑스적인 프랑스인이라는 사실과 만난다. 사르트르가 프랑스에서나 나올 수 있는 사상가, 문필가였다면 드골 역시 프랑스에서나 나올 수 있는 정치지도자였다.

2. 우리 사는 세상에 대한 적실성 있는 수영장 비유
사회는 수영장과 같다. 헤엄을 잘 치고 다이빙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헤엄을 못 치는 사람도 있다. 사회에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이 있고 돈도 권력도 없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다. 헤엄을 잘 치고 다이빙을 즐기는 사람이 바라는 수영장과 헤엄을 못 치는 사람이 바라는 수영장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전자는 높은 데서부터 다이빙을 즐길 수 있게끔 물이 깊은 수영장을 원하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물이 깊은 수영장에서 그는 빠져 죽기 십상이다. 그런데 '사회'라는 수영장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래서 수영장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관하여 전자와 후자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쟁투가 벌어진다. 헤엄을 잘 치고 다이빙을 즐기는 사람들은 헤엄을 못 치는 사람들에게, "너희들은 수영장을 설계할 자격이 없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아주 오랫동안 그들은 수영장 설계를 독점해왔다. 그들에게 권력과 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헤엄을 못 치는 사람은 수영장 밖에 머물러 소외되거나 수영장에 뛰어들어 죽기살기로 헤엄을 쳐 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당연히 빠져 죽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렇지만 일부 헤엄치기에 성공하고 다이빙을 즐기기까지 이른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이를 두고 '자유주의'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한편 빠져 죽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에 견딜 수 없어 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빠져 죽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 수영장을 꿈꾸었다. 드디어 그들은 헤엄을 못 치는 사람들과 함께 궐기하여 수영장 설계권을 쟁탈하기도 했다. 그리고 빠져 죽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 수영장을 만들었다. 이 수영장의 이름을 사람들은 '공산주의 사회' 라고 말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었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빠져 죽지 않기를 바라지만 또한 누구나 다이빙을 즐기고 싶어했다. 아무도 '땅 짚고 헤엄치기'식 삶에 만족하지 않았다. 땅 짚고 헤엄치기는 곧 권태를 불러온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아닌 땅 짚고 헤엄치는 수영장을 기획하고 만들었던 바로 그 사람들이 다이빙을 즐길 수 있는 수영장을 따로 만들어 즐기는 일이 벌어졌다. 그들은 "하나의 사회는 하나의 수영장뿐"이라는 원칙을 배반한 것이다. 이렇게 나는 사회를 수영장에 빗대어 생각해 보곤 한다. 한국 사회라는 이름의 수영장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최근 영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기찻길에서 자살한 사람은 10시간이나 그대로 방치한 채 기차들이 계속 오고갔다. 대처리즘 이후 사기업이 된 영국의 철도회사에게 시신을 수습하는 것보다 기차시각을 맞추는 게 더 중요했던 것이다. 성장과 경쟁 그리고 효율을 모토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이렇게 인간성을 좀먹어 들어가고 있다. 그래도 영국 사회란 수영장엔 사회안전망이 있다. 비록 신자유주의의 공격으로 타격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 남아 있다. 프랑스에서 사회안전망이 정착되었던 1930년대와 2차대전 직후 프랑스의 국민소득에 비해 오늘 한국의 국민소득이 훨씬 높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수영장에서는 오랜 동안 사회 안전망을 구축을 아주 등한시해왔다. 안전망이 허술한 수영장에서 빠져 죽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리고 언제 빠져 죽을지 모른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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